막걸리를 병에 담아라 한식이야기


1.

막걸리는 태생적으로는 그리 고급술이 아니다. 이름부터가 ‘막 걸러서’ 마신다고 막걸리인데 고급술이었을 리가 없다.

좀 알기 쉽게 분류하자면, 막걸리는 탁주의 일종이다. 고두밥과 누룩을 섞어넣은 독에서 술이 숙성되는데, 위에 뜬 맑은 부분을 용수를 박아 곱게 거른 것이 청주이고 밑에 가라 앉은 술지게미 부분을 짜낸 것이 탁주이다. 말하자면, 탁주는 청주를 만들고 난 나머지에서 짜낸 술이라고 해도 좋다.

그 탁주를 희석시킨 것이 막걸리이다. 도수가 대개 6도 정도이니, 15도 가량 되는 청주나 탁주보다 많이 희석된 셈이다. 막걸리는 이른바 양산형 술이었다. 옛 문학에 나오는 모주(母酒)가 바로 막걸리다.


2. 

비극은 막걸리의 그 태생 탓에 발생했다. 한국인들은 유감스럽게도 막걸리를 형편없는 술로 취급해왔다. 플라스틱 통에 담긴 막걸리 병을 본 적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막걸리에 대한 참담한 모욕을 목격한 것이다. 세계 어디에서건 아무리 싼 술이라도 플라스틱 패트병에 담지는 않는다. 나는 막걸리를 제외하고 페트병에 들은 술을 딱 한 번 본적 있다. 그것은 외국의 어떤 노숙자가 품고 다니던 정체모를 액체였다.

종이팩에 든 사케는 있다. 하지만 사실 종이팩 사케는 사케 중에서도 최하급일 뿐이고 근사한 병에 든  좋은 사케도 많다. 하급과 고급의 스펙트럼이 다양할 따름이다. 반면에 막걸리는 패트병에 든 것만 있지 다른 종류는 거의 없다. 스펙트럼이고 다양성이고 전혀 없고, 죄다 싸구려 술 취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최근의 막걸리 열풍에 힘입어 병에 든 막걸리가 나오고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이례적인 일처럼 비춰지고 있는 판이다. 막걸리를 병에 담는 것은 ‘돼지목에 진주’라는 태도를 은연중 내비치고 있는 것이다.

원래부터 싸구려 술이니까 당연하다고 말할지 모른다. 그렇지만 '술지게미를 짜서 만들었다'는 것은 막걸리의 ‘유래’이지, 지금의 막걸리, 혹은 앞으로의 막걸리가 계속 그래야만 한다는 것이 아니다.

나는 막걸리를 비지에 비유한다. 예전에는 두부를 만들고 난 찌꺼기로 비지를 만들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 비지가 더 비싸다. 옛날식으로 맷돌을 갈아서 두부를 만드는게 아니기 때문에 찌꺼기가 따로 없어서, 일부러 비지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지금 우리가 비지를 먹는 이유는 찌꺼기를 버리기 아까워서가 아니라, 비지 고유의 맛 때문에 일부러 만들어 먹는 것이다.

막걸리도 마찬가지이다. 예전처럼 술을 빚어서 술지게미가 나오는 시대가 아니다. 술지게미를 버리기 아까워서가 아니라, 애초에 처음부터 막걸리를 만들기 위해 술을 담그는 것이다. 그렇다면 막걸리가 얼마나 싼지 재는 ‘경제성’은 별 의미가 없다. 지금의 우리는 막걸리 고유의 맛과 향 때문에 마시는 것이지, 단지 싸다고 마시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실제로는 막걸리 원가가 청주나 소주보다 더 비싸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막걸리가 싸지 않으면 마시지 않겠다’는 모종의 조건을 가지고 있었던 모양이다. 더 이상 제조원가가 싸지 않은데도 값을 싸게 유지하기 위해, 막걸리는 슬픈 다운그레이드를 거듭한다. 막걸리를 담는 용기는 대부분 싸구려 패트병이나, 대폿집의 찌그러진 양은 주전자가 되어버린다. 카바이트 따위를 섞어서 맛을 내게 되고, 원료가 되는 고두밥은 중국산 저가 수입쌀로 짓게 된다.

양조업자들은 ‘싼 술’이라는 인식에 맞춰 막걸리를 다운그레이드했다. 사람들이 ‘어이쿠, 막걸리가 참 싸네?’ 하면서 마셔줬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막걸리는 싸구려, 형편없는 술이라는 이미지만 강화되면서 버림받았다. 말로만 전통주입네 뭐네 할 뿐 막걸리의 몰락을 애석해 하는 목소리도 별로 없었고, 그저 다들 원래 막걸리는 그런 술이려니 했을 뿐이었다. 반면에 단가가 훨씬 비싼 맥주나 일본산 사케는 손쉽게 대중화 되었다. 

막걸리의 싸구려 플라스틱 용기는 나에게 그 다운그레이드의 어리석음을 보여준다. 그것은 단순한 플라스틱 통이 아니라, 일종의 상징이다. 막걸리라는 고유의 맛을 가진 술을, 아무 고민없이 그저 타성에 젖어 싸구려로 만들어버린 이 나라의 무지를 상징하는 것이다.


막걸리와 사케. 막걸리 용기에 아무 문제가 없다고 생각되는가?


3. 

최근의 막걸리 유행은 나에게 작은 위안거리가 된다. 그것이 외국인들에게 의외로 인기가 좋다는 사실 때문에, 귀얇은 국민성으로 반짝몰이하는 같은 기색이 없진 않아서 좀 불쾌하긴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가장 처음으로 쇄신, 또 쇄신 해야 하는 것은, 이 시대에 맞는 막걸리의 포지셔닝이다. ‘막걸리 바’랍시고, 무턱대고 플라스틱 통을 가져다 놓고 어울리지 않게 와인 대접을 하는 것은 코미디에 불과하다. 막걸리는 이 시대의 ‘대중적인 술’의 수준에 걸맞는 업그레이드가 필요하다. 막걸리는 이제 ‘술의 한 종류’이지, ‘청주를 만들고 남은 찌꺼기’가 아니다.

국산의 고급 쌀, 외피를 깎아내고 깨끗하게 도정한 쌀로 만든 고급 막걸리를 만들어 볼 기회가 지금이다. 여러 가지 다양한 지방의 양조법을 체계화 하고 라벨링해서 브랜드화 할 기회가 바로 지금이다. 어차피 막걸리는 더 이상 ‘싸서 마시는 술’이 아니기 때문에, 막걸리 고유의 맛과 향을 집중해서 성장시켜야 옳다. 그리고 우리는 막걸리의 업그레이드를 괄목상대하고, 겸허하게 존중해 줄(지갑을 열어줄)자세가 되어 있어야 한다. 고작 막걸리가 싸니 비싸니 하는 뜬금없는 소리는 여기에 끼어들면 안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막걸리를, 최소한 다른 술 못지않은 근사한 병에 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예의다. 막걸리에 대한, 그리고 막걸리를 전통주라고 말하고 있는 우리 스스로에 대한.


덧글

  • Niveus 2010/03/12 14:15 # 답글

    요새 매장가시면 아시겠지만 양산형(?!) 막걸리(2천원이하)는 플라스틱이지만 3천원대 이상의 자칭(...) 고급형(!?) 막걸리는 모두 병에 담겨 나오고 있습니다.
    ...맛차이가 있긴 있더라고요 --a
    현재 보통 둘의 차이는 원료가 쌀의 원산지정도밖에 없는듯합니다.
  • 2010/03/13 00:35 #

    그렇기는 하지만 그런건 극히 최근에야 나온 것이고, 아직 대중화가 별로 되지 않았죠. 큰 마트에나 가야 있지, 술집에 가서 병에 든 막걸리를 보는건 아직까지 어렵지 않습니까. 최소한 사케 마시는 정도로는 대중화 되어야 하는게 아닌가 싶은데요.

    게다가 사케를 '준마이'니 '도쿠센'이니 하면서 나누듯이, 막걸리도 쌀 도정 정도에 따라 나누고 지역별로 특화 시켜서 상품화할 필요가 있어 보입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데 그런 세련된 기획을 할만한 인물이 없는듯... 참 암담하죠
  • ㅇㅅㅇ 2010/03/12 20:02 # 삭제 답글

    요즘은 병에 담긴, 고급형들 많이 나오던데용, 이런저런 믹스해서 나오는 것도 있고,
    근데 막걸리가 프라스틱에 담긴 이유가 단가 줄일려고 그랬던 거였군요..
    완전 밀봉을 하면 안된다던가 하는 뭔가 의미가 있는건지 알았는데ㄱ-;
    진실이 서글픈........어.......
  • 2010/03/13 00:37 #

    앞으로 바뀔거라고 믿습니다. 충분히 문제의식을 퍼뜨려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각 지역의 영세한 막걸리 양조장까지 용기를 병으로 바꿀날이 오면 좋겠네요.
  • 2010/03/12 21:59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0/03/13 00:29 #

    그렇군요... 하지만 어찌되었든 카바이트가 막걸리를 싸구려로 만드는데 일조했다는 점은 변함 없습니다. 카바이트가 나쁜게 아니라, 그걸 막걸리에 넣은 '무지'가 나쁜 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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