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스를 생각하며 일상

퍼스에 대한 나의 지식은 ‘어디서 이름만 들어본 적 있다.’라는 것이 아주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물론 그것은 전적으로 영미철학 전반에 걸친 나의 지식 부족에서 비롯한다. 그러나 이것은 비단 나만의 문제는 아니다. 한낱 학부생인 나의 제한된 견해를 펼치자면, 한국에서는 대체로 철학 뿐만 아니라 영미권 사상 전체가 그다지 대접받지 못하는 것 같은 느낌이다.(물론 이것이 나의 심각한 오해일 수 있다는 가능성은 항상 열려있다.)

활자속에서 간혹 보이는 이름들, 콰인, 크립키, 퍼트남의 이름에서 칸트나 헤겔, 하이데거와 같은 이름의 무게감을 느낄 수 없다. 학문의 인기를 매긴다는 발상 자체가 우습긴 하지만, 굳이 그렇게 따져보자면, 그들은 비주류인 셈이다.

인기로 따지자면, 언제나 인기 만점인 영국의 경험주의자 러셀이 있겠지만, 그의 인기는 사실 그의 학문적 성과에서 비롯되었다기 보다는, 촌철살인의 날카로움과 위트를 보여주는 그의 칼럼과 에세이, 그리고 그가 수상한 노벨문학상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내가 이야기하고 싶은 포인트는 바로 이 부분이다.

러셀은 순수하게 철학자(혹은 순수학문에 매진하는 사람)였지만, 정기적으로 미국의 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에세이를 썼으며 반전 평화운동을 벌였다. 그의 날카로운 사회 분석은 명석한 논리적 사고능력 아래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는 저명한 기호학자라고들 하지만, 일반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 잘 팔리는 소설가이기도 하다. 그의 소설은 그가 지니고 있는 수많은 기호학적 지식과 코드들을 포함하고 있기에 그렇게 팔릴 수 있다.

비슷한 예는 무수히 많다. 슬라보예 지젝은, 슬로베니아라는 이름만 들어본 동유럽 국가 출신의 철학자지만, 그의 영화와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탁월한 분석은 현재 그를 세계적인 유명인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막스 뮐러는 비교언어학자였지만, 그 언어학적 재능을 발휘해 아직까지 읽혀지는 아름다운 소설인 ‘독일인의 사랑’을 집필했다. 피히테의 경우는, 칸트 이후의 독일 관념론을 형성시킨, 말 그대로 관념적인 철학자의 전형이지만, 나폴레옹 군대가 침입해오자 ‘독일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우국충정(?)의 대 강연을 한 유능한 정치 선동가이기도 하다. 그리고, 주지하다시피, 젊어서 내내 헤겔을 공부하다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마르크스의 생애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이 쯤이면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방향이 드러났을 런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순수학문의 담장 밖으로 나오는 행위에 대한 일종의 예찬이다. 모두가 러셀이나 마르크스가 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헤겔만이 진정한 학자는 아닌 것이다.

퍼스를 비롯한 영미권의 경험주의적, 혹은 실용주의적 사조를 우리가 주목해야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퍼스의 역동 기호학은, 어떤 추상적인 구조의 구축에 그 중점을 두기 보다는, 그의 연구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발화의 성립에서 유리되지 않게 되는 것에 보다 큰 목표를 둔 듯 하다. 결과적으로 소쉬르의 구조 기호학에서의 기표와 기의는 철저하게 유리되며, 이후 데리다 같은 인물이 그 유리된 틈을 비집고 들어가 일종의 말장난 같은 행동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데리다 스스로가 기표와 기의의 미끄러지는 관계를 ‘차이의 놀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가며 서술했으므로, 말장난이라는 단어를 써도 그에게 실례는 아닐 것이다.)

그러나 데리다에게 묻건데, 그의 해체와 우상파괴행위는 어떤 생산적인 요소를 포함하고 있는가?

우리의 지적 탐구는, 어디까지나 인간과 그 환경세계에 대한 관심이라는 동일한 종착지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는 인간과 세계라는 커다란 전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서 퍼스가 기호와 그 해석에 대한, 어떠한 ‘레디메이드 상품’의 생산을 가능케 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나 ‘인간은 기호이다.’ 라는 말에서 보듯, 그의 관심은 어디까지나 인간에 집중되어 있었으며, 그의 기호학의 주체는 어디까지나 인간 혹은 그를 둘러싼 환경이었지 ‘기호’라는 차가운 개념이 아니었다.

학문은 어떤 물질적인 결과를 생산하지 못할 때 그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니라(많은 응용 학문들이 이 점을 잘못 생각하고 있는 듯 하다.), 인간과 유리 될 때 그 힘을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어느 수업시간에 들은 말이 떠오른다. “현재 세계를 경제학적인 논리가 지배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인간적인 경제학이 나와야 할 것입니다.” (2007/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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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 학부 수업 때 일주일에 한번씩 강의의 단상을 적어서 보내라는 교수님이 계셨다.
그때는 귀찮았지만, 그덕에 지금 나는 몇개의 유물(?)을 발굴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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