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다리 막걸리 박물관 기행


배다리 막걸리를 처음 본 것은 작년 연말쯤,
이태원 제일기획 근처에 있던 '호중천'이라는 한국식 술집에서였다.
그 술집은 내가 알고 있는 한 가장 빨리 망한 술집이기도 하다. 불과 몇달만에 없어져버렸다.
(지금은 그 자리에 한예슬이 광고하는 카페 베네가 오픈 준비중이다.)

꽤 인상적인 곳이었다. '유다', '문타로' 등등 잘한다고 소문난 일본식 이자카야 바로 맞은 편에서 한국식 주점이라는 컨셉을 대놓고 표방하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입구의 좀 어설픈 입간판에 '막걸리 14종 구비'라고 씌여 있던 곳이다.
그곳에서 막걸리 메뉴판을 보던 중에 알게 된 것이 배다리 막걸리다. 이름이 독특해서 기억하고 있었다.

한참뒤에 주간지 시사인에서 막걸리 특집 기사가 난 것을 봤다.
막걸리 양조장 몇 군데를 소개해 놓은 기사였다. 그중에 이 배다리 양조장이 소개되어 있었다.
그냥 양조장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박물관을 조성해놓았다고 씌여 있었다.
게다가 고양시에 소재한 곳이었으니 서울에서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 않은가. 언제 꼭 한번 가봐야겠단 생각을 했었다.

그렇게 생각만하다가, 기어코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 것이 바로 어제. 날씨 좋은 토요일이었다.


대중교통을 타고 가도 편했다. 3호선 원당역에서 걸어서 5분 남짓이면 도착하는 곳이다.
현재 이곳의 행정지역명은 '고양시 덕양구 주교동'이다. 주교(舟橋)란 배로 만든 다리라는 뜻. 예전엔 이 마을의 하천을 건너기 위해 배로 다리를 만들어서 썼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을 '배다리 마을'이라고 불렀던 모양이다. 공식적인 행정명이 '주교리'가 된 것은 그런 까닭이다. 대부분의 한국의 마을 이름이 대개 그런식 이듯이.

도착해보니 그렇게 크거나 고색창연한 맛은 없었다. 큰 술독 같은게 놓여 있어서 눈길을 끌긴 했는데, 꼭 젊은이들이 빠져나간 시골 농가처럼 전체적으로 좀 산만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방문객도 보이지 않았다. 깨끗한 건물이 홀로 서있는게 좀 외로워 보였다.

한때는 열심히 곡식을 탈곡했을 농기구들도, 전부 외로워 보였다.


건물 2층이 박물관이었고, 1층은 막걸리를 파는 곳이었다.
박물관인 2층부터 둘러보기로 했다. 사진촬영은 금지라고 씌여 있었지만 몰래 몇 장 찍었다. 2층 박물관은 2개의 전시실로 나누어져 있었다.

박물관에 따로 관리인이 없어서 좀 허전했다. 체계적으로 정리되어 있는 곳이 아니었다. 예전에 양조장에서 쓰던 도구들, 제분기나 용수, 장군, 술독 등등이 그냥 진열되어 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산업화를 거치면서도 그 낡은 물건들이 용케 버려지지 않고 남아서 전시되고 있는 것만으로도 전부 기특하다는 느낌이다.

이 양조장이 문을 연 것이 1915년이라고 하니, 이 커다란 것들은 아마 일제시대 때부터 실제로 쓰이던 술통일 것이다. 박물관 내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물건이다. 앞에 있는 제일 큰 놈은 내 키보다도 훨씬 크다. 뒤에서 묵묵히 술을 젓고 있는, 장인같은 마네킹이 보인다.
전시실 앞의 소줏고리. 증류된 청주가 저 약탕기 같은 옹기의 천장에 맺히고, 그게 다시 소줏고리의 주둥이를 따라 흘러내려서 병에 모이면 소주가 된다. 배다리 양조장에서는 실제로 지금도 막걸리 뿐만 아니라 청주와 소주가 만들어 진다. '주교주'라는 약주와 '아사달'이라는 소주가 있다. 

배다리 양조장의 이름이 알려진 일화가 있다. 박정희 전대통령이 이 배다리 막걸리를 마시고 칭찬한 이후, 청와대에 1966년부터 1979년까지 막걸리를 납품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 때문인지 옆 전시실에는 막걸리를 들고 계시는 황금빛 각하(;;)의 조각이 앉아있다...


옆 전시실에서 본 아주 예쁜 술상. 인근 지역에서 기증 받은 물건이니, 아마도 예전에 정말 쓰던 물건일 테다.
첫번째 전시실이 양조장에서 쓰는 도구들을 진열해 놓았다면, 이곳엔 생활 용품을 모아놓았다.
물론 체계적으로 진열되어 있는 것은 아니고, 그나마 청소도 잘 안되어 있다. 전시물 위에 죽은 파리가 있었을 정도다. 먼지도 많고 조명도 대부분 꺼져 있었다. 퇴락한 느낌이 많이 나서 아쉬운 기분이 들게끔 한다.

그렇지만 최소한의 보존을 해 놓은 덕에 이렇게 예쁜 것도 발견할 수 있었다. 사소한 것이지만, 이런 디자인이 그냥 잊혀져 버린다면 그것도 국가적인 손실이다. 전통 공예를 현대화한다고들 이것저것 해대는데, 내가 보기엔 이것 자체로도 충분히 현대적이다. 왜 '발견'하려는 노력을 그렇게 안하는 것일까. 발견할수 있는 '안목'만 있다면, 전통적인 디자인도 감탄할 만 한 것이 많이 있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은 그 '안목'이 너무 없다는 것.

전시실내에는 사진 촬영이 금지라고 씌여 있어서 사진은 별로 많이 찍지 못했다.
전반적으로 말해서, 박물관 내에 눈에 확 띌만큼 대단한 물건은 없다. 다만 옛 양조장에서 쓰던 물건들을 실제로 볼 수 있다. 용수니, 소줏고리니 하는 그런 물건들 말이다. 

좀 안타까운 느낌도 들었다. 인력의 부족 때문인지, 관리가 잘 되어있지 않았다. 전문적인 학예사 같은게 없으니 진열이 체계적으로 되어있지 않다. 그저 전시실 공간 속에 물건들이 중구난방으로 놓여있을 뿐이었다. 아마 방문객이 별로 없어서 관리에 소홀해 졌을런지도 모른다. 내가 구경하는 동안 인기척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조장에서 박물관을 만들었다는 사실 자체는 높이 살만 하다. 양조장 스스로가 최소한의 자각은 하고 있는 셈이다.
'나는 전통주를 만드는 양조장이다.'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듯한, 그런 인상.

1층은 교외의 카페같은 느낌이 나는 호젓한 가게였다. 수많은 막걸리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물론 배다리 막걸리도 팔고 있었다
거기서 막걸리를 마실수도 있으며 안주를 주문할수도 있었다. 다른곳에는 사람이 전혀 없는 것에 반해, 여기엔 손님도 있었고 점원도 있었다. 양조장은 가업이니 아마도 가족들일 것이다. 계산대에 서 있던 아저씨가 막걸리를 포장하는 걸 보니, 아마 저렇게 가내수공업식으로 출하하는 모양. 

배다리 햅쌀 막걸리다. 홈플러스에서 파는걸 본 적 있다. 저기서 한병 마셨는데, 단맛이 전혀 없고 막걸리답지않게 좀 가벼웠다. 탄산이 강하고 새콤달콤한 그런 막걸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밋밋하다고 얘기하겠지만, 좋게 말하면 깔끔하다. 병이 날씬하고 길어서 예쁘다.


배다리 쌀 막걸리다. 쌀이라고 씌여있지만 소맥분10%가 들어갔다. 마찬가지로 다른 막걸리에 비하면 걸쭉하지 않고 가볍다. 햅쌀 막걸리에 비해서 단맛이 강해서 감미료가 좀 들어간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지만 맛있었다.

돌아오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다. 배다리 양조장은 일본이나 유럽의 전통적인 양조장처럼 아름답게 정비되어 있거나, 체계적으로 관리되어 있지는 못하다. 한마디로 '능숙하지 못한' 것이다. 그러나 관리와 경영에 능숙하지 못할 뿐, 전통주에 대한 마음이 소홀한 것은 아닐 것이다. 작게나마 개인적으로 박물관을 세웠다는 사실 자체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마음이 우선된다면 기술적인 능숙함은 그 다음 문제다. 게다가 그 나머지의 상당부분은 사실 소비자인 우리들이 부담할 몫이다. 우리들이 막걸리와 전통주의 소비를 자주 하고, 박물관에 많이 방문하고, 관심을 가져 주어야 그 이후로 점차 발달할 수 있는 법이다. 그러지 않고는 누구의 '능숙하지 못함'도 탓할수 없다.
배다리 박물관은 그 존재 자체가 이미 그렇게 말하고 있다. 그걸 우리들이 외면해서는 그저 퇴락할 뿐이다.

바깥날씨가 유달리 좋아서인지, 아니면 막걸리에 약간 취해서인지, 양조장을 나서는 기분이 참 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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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jeehyun 2010/04/10 01:18 # 삭제 답글

    배다리 술박물관 내일 가요- 가기 전에 찾아봤는데, 글을 너무 잘 써놓으셔서 참고되었어요^^ 음, 예상보다 훨씬 관리가 안되나봐요..그래도 배다리막걸리 먹으러 갑니다-글 잘보고가요^^
  • 필로테스 2010/04/16 16:05 #

    읽어주신것만 해도 감지덕지입니다. 잘 다녀오셨는지...
  • 2010/04/23 23:01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필로테스 2010/04/25 23:19 #

    비공개로 해도 어차피 검색에는 나옵니다;;....
  • makuly 2010/06/03 09:44 # 삭제 답글

    게시글잘보고구 갑니다.
    막걸리(makuly)사이트 문열었어요~http://makuly.co.kr
    많이방문해주세요~^^ 자료도 올려주시면 좋구요.makuly.com (막걸리닷컴)
    대한민국대표 막걸리사이트가 되고싶은데 블러그 핑(ping)도쏴주시면 감사하구요..
    네이트에서 검색어 "makuly" 구글에서도 "makuly"
  • 자부심 2011/03/18 11:33 # 삭제 답글

    배다리는 술도가라 하는데 어디서 술을 만드는지 알수가 없엇다.
    이야기 듣기는 자체 시설이 없어서 다른곳에서 만들어 온다 한단다.
    직접 만들지도 않으면서 자가 공장을 운영하는 것 처럼 이야기 하니
    신뢰가 가지 않는다..
  • 필로테스 2011/03/18 23:32 #

    글쎄요, 제조 시설이 붙어있진 않더라도 아무데서나 막 들여오는 건 아닐텐데요. 확인 안해도 알수 있습니다. 퀄리티는 둘째치더라도, 쌀 100%에 무 아스파탐 막걸리 라인을 만드는 곳이 아무데서나 막걸리를 들여오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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