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을 '만들자' 한식이야기


1. 전통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스코틀랜드의 킬트 이야기는 유명하다. 킬트는 허리에서 무릎까지 오는 주름치마를 말한다. 이 킬트(kilt)는 타튼(tartan)이라고 불리는 양모 재질의 격자 무늬 모직물로 만들었는데, 스코틀랜드 씨족마다 고유의 킬트 디자인이 있었다고 한다. 스코틀랜드인들은 그들의 역사와 문화, 전통을 나타내는 민족적인 아이콘으로, 주저없이 이 킬트 치마를 내민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킬트의 역사가 아무리 길게 잡아도 300년 남짓밖에 되지 않았고, 게다가 그 탄생 역시 잉글랜드 인에 의한 것이라는 점이다.

1707년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에 병합되고 수십년이 지난 뒤, 잉글랜드 랭커셔 출신 제철업자 토머스 로린슨이 연료용 목재를 얻기 위해 스코틀랜드 고지대 삼림에서 스코틀랜드인들을 인부로 고용하면서 일하기 편한 옷으로 만든 것이 킬트였다. 그러니까 사실 벌목 노동자들의 작업복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러던 것이 19세기 이후 민족의 원형을 찾는 낭만주의 바람이 불면서 고래의 전통의상으로 날조되고, 거기에 방직업자들의 농간이 끼어들어 스코틀랜드의 민족의상이 되고 만 것이다.

이 킬트 이야기는 에릭 홉스봄의 <만들어진 전통>이라는 책에 나오는 유명한 사례중 하나다. 책에서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여겼던 전통이, 사실은 많은 경우 근대에 생겨난 발명품에 가깝다고 말한다.

전통은 항상 바뀌어 왔고 만들어져 왔다. 사실 한식의 경우도, 우리가 알고 있는 형태로 자리잡게 된 것은 모두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짧다. 한국을 대표하는 음식으로 항상 언급되는 김치를 생각해보라. 그 역사가 스코틀랜드인들이 킬트를 입기 시작한 시기 이상 거슬러 올라가지 않는다는 건 이미 다들 잘 알고 있을 것이다. 17세기의 요리서인 ‘음식디미방’에는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한식과는 다른 생소한 음식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누르미’라는 음식, ‘즙을 끼얹는다’는 요리법 등에서 지금의 한국 음식을 떠올릴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지금과는 밥상의 모습이 상당히 달랐던 모양이다.

불고기, 삼계탕, 제육볶음, 각종 찌개류 등을 포함해서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한국 음식이 등장한 것은, 일제시대 들어서이거나 6.25 이후인 경우가 상당수다. 더 구체적인 정보는 찬별님의 블로그를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전통은 허구다’라는 폭로가 아니다. 그게 아니라 ‘전통은 지금부터라도 만들 수 있다’라고 하는 하나의 제안이다. 가만히 앉아서 전통이 빈약함을 탓할게 아니라, 전략적으로 전통을 만들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어느 나라의 국민이나 그런 노력을 해왔다. 잉글랜드에 병합당해 정체성을 잃어버릴 처지에 놓인 스코틀랜드인들이 킬트를 만들어낸 것처럼 말이다.

2. ‘한국 음식은 원래 그렇다?’


‘한국음식은 원래 그렇다’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제법 있다는 것은 좀 서글픈 일이다. 대개 한국 음식의 부정적인 측면을 부각할 때 자주 등장하는 말이라서 그럴 것이다.

그럴때마다 그들에게 묻고 싶은게 있다. 그 ‘원래’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를 말이다. 지금과 같은 형태로 한국 음식이 자리잡은 것은 식민지 시절이나 전쟁 직후, 혹은 산업 발전이 고도화 되면서부터다. 식당 중심으로 외식 산업이 생긴 것이 그 무렵이었기 때문이다. 규격화된 음식은 항상 식당을 통해 생기는 법이다.

그러나 그 시기에는 ‘파인 다이닝’에 어울릴 만한 음식이 등장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고춧가루를 잔뜩 푼 찌개가 냄비째로 식탁에 올라가고, 그 안에 여러명의 숟가락이 들락날락 거리는 공사판 함바집 같은 식당 일변도인 분위기였다. 질보다 양, 맛보다 가격이 우선인 시대였으니까. 위생은 둘째치고, 그런 찌개에 들어가는 다량의 고춧가루는 그냥 ‘재료야 어떻듯 그럭저럭 먹을수 있을만한 맛을 내자’는 심보로 넣었을 혐의가 짙다. 한식의 맛과 질이 거기에서 멈춰서야 되겠는가.

글쎄, 물론 그것도 전통이라면 전통이다. 그러나 우리가 어려운 시기를 거치면서 한껏 질적으로 다운그레이드된 음식을, ‘원래 그렇다’고 실드 쳐줘가면서 그대로 고수할 필요는 없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화적인 부가가치 아닌가. 그러기 위해서는, 하향평준화 되어있는 음식들의 가치를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조금만 의식을 갖고 손본다면 서민 문화에서 파생된 음식조차도 얼마든지 멋진 음식으로 재탄생 될 수 있다. 일본의 지라시 스시는 원래 뱃사람들이 먹는 음식이었지만, 요샌 상당히 팬시한 음식으로 소비되고 있다. 전통의 새로운 창조다.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 한식도 장려받아야 한다. 과거의 쇠고기 소비율과 지금의 쇠고기 소비율이 다르듯이 시대에 따라 사랑받는 재료는 항상 다르다. 기본 레시피를 유지한 상태에서 소재만 다르게 한다면 무수한 새로운 음식이 등장할 수 있다. 시대가 바뀌면서 개장국이 육개장이 된 것처럼, 칼국수 국물에 앞으로는 돼지뼈가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시도를 자꾸 퓨전이니 뭐니 해서 백안시 할 게 아니라, 한국 음식의 확장으로 받아들이려는 우리 태도가 필요하다. ‘한국 음식은 원래 그렇다’ 정신을 좀 누그러뜨리고 보면, 칼국수에 바지락, 닭국물만 넣을 필요는 없지 않은가? 라멘에도 쇼유, 돈코츠, 미소 등 지역마다 베이스가 다르지 않은가. 맥도날드 햄버거만 해도 새로운 버거가 자꾸 나오고 있다.

이 논리를 조금 더 확장하면 외래 음식도 한국 음식으로 재탄생 시킬수 있다. 커틀릿이 돈까스가 된 것처럼, 한국인들이 사랑해 마지않는 파스타나 피자도 한국식으로 변형될 수 있는 셈이다. 사실 그럴 기미가 조금씩 보이긴 한다. 언젠가 된장 파스타를 먹어본 적 있는데, 맛이 상당히 좋았던 기억이 있다. 한국식 파스타를 본격적으로 표방하는 식당이 나와줘야 되지 않을까 싶다. 피자도 한국에선 재료가 큼직하게 토핑으로 올라가는 걸 좋아하니, 이것을 전략적으로 ‘한국식 피자’라고 해도 무방하다. 일본식 돈까스, 카레 가게는 이미 홍대에 한가득인 상황이니, 한국식 피자, 파스타라는 말을 만들어 낸다고 한다고 해도 이상할건 전혀 없다. 외래 문화를 우리 식으로 녹여내는 전통을 만드는 것이다. 그런 음식을 당장 ‘전통 한식’이라고 부를수야 없겠지만, 엄연히 ‘현대 한국 음식’이긴 하잖은가.

마지막으로, 단절된 전통을 복구하려는 노력에 다들 관심을 좀 가져줘야 한다. 끊어진 전통은 그 자체로 풍부한 재료일 뿐이지, 그게 곧바로 전통이라고 볼 수는 없다. 심폐소생술을 해서 살려내야 전통이다. 과거 상류 계층의 식문화를 발굴하여 레시피를 현대화 하고, 그것을 다시 대중화 하는 것이 바로 심폐소생술이다. ‘누르미’도 좋고, ‘즙장’도 좋고, ‘진장’도 좋다. 지금 식당에서 그것들을 제대로 체득해서 상품화하지 못하고 있으니까 소비자들은 ‘전통적인 정통(authentic) 한식’을 제대로 모르고 있는 실정 아닌가. 한정식 집에서도 콘 샐러드가 나오거나, 무슨 일본식 튀김이 나오는 웃지 못할 경우도 있다.

사실은 과거 양반가에서 먹던 음식들이 한식의 ‘정수’라고 불려야 할 것인데, 식당이건 소비자건 산업화 과정에서 생긴 함바집 음식 같은 것 외에는 한식을 잘 모르고 있는 실정이다. 요리 연구가들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좀 나오고, 한식집들도 소비자들에게 ‘정통 한식’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을 느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소비자들도 물론 그에 맞는 태도를 지닐 필요가 있다. 외국 음식을 줄줄 꿰는 것을 멋으로 여길게 아니라, 한식에 관심을 갖고 기꺼이 지갑을 열줄 아는 태도(?) 말이다. 최소한 잘 끓인 된장 찌개가 ‘알리올리오’보다는 비싸야 한다는 것이 상식이 되었으면 한다.

한식의 전통은 이렇게 해야 ‘만들어진다’. 이미 원래부터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만들어 내야 하는 것이다. 국민 모두가 이 커다란 한식의 담론을 공유하게 된다면, 한식은 조만간 스코틀랜드의 ‘킬트’처럼 될 것이다. 스코틀랜드인들이 킬트를 언제부터 입기 시작했냐고?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건 지금 그들은 킬트라는 멋진 전통의상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래야 한다.



덧글

  • ArchDuke 2010/05/07 20:43 # 답글

    만한전석 같은게 있으면 좋으련만요~~
    뭐 콘 샐러드도 튀김도 가져오면 한국음식이 되지 않을까요;;
  • 필로테스 2010/05/08 11:50 #

    콘샐러드나 튀김은 현대 한국 음식이 될순 있어도 한정식에 나올만한 음식은 아닙니다.... 우스터 소스를 뿌린 돈까스가 일본음식이긴 하지만, 가이세키요리에 나오진 않잖아요;;

    중국의 만한전석처럼 한국도 팔도 요리를 집대성한 그런 궁중요리를 발굴하면 좋을텐데요...
  • ㅣㅠㅣ;ㅣ 2010/05/07 23:41 # 삭제 답글

    이미 궁중 음식은 파인 다이닝이죠...
    제대로 팔지도 먹지도 않을 뿐
  • 필로테스 2010/05/08 11:56 #

    경쟁력이 떨어져서 그런 걸까요. 서울에서 가이세키 요리를 내놓는 일식집 정도의 숫자만 있어도 좋을텐데. 제가 아는 궁중 요리집은 가회동 궁연 하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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