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식이야기 2 - 반찬이라는 '개념' 한식이야기



‘뜬금없이 웬 반찬?’이라고 물음표를 띄우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글쎄, 나는 우리가 한식을 말할 때에는 반찬이라는 개념에 대해 좀 생각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한식의 큰 매력 중 하나가 바로 반찬이다. 나는 밥과 함께 반찬을 먹는 느낌이 좋다. 많은 다른 한국인들도 그럴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인 우리들에게는 익숙하겠지만, 세계적인 관점에서 보면 반찬은 상당히 독특한 개념이다. 나는 한 서양인이 어떤 한식을 좋아하냐는 질문에 ‘반찬’이라는 기묘한 대답을 하는 것을 본 적 있다. 그때 나는 그것이 한식의 정수를 꿰뚫는 굉장히 깊이있는 대답이라고 생각했었다. 알고보니 그는 맛있게 먹었던 어느 반찬을 가리키면서 ‘이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봤고 누군가 그것을 ‘반찬’이라고 이야기 해준 모양이다. 반찬을 음식의 이름이나 혹은 조리법의 하나로 파악한 셈이다. 그만큼 반찬이라는 개념 자체가 세계적으로 생소하다는 의미다.

반찬은 음식의 이름도 조리법도 아니다. 오히려 음식의 분류법에 가깝다. 나물, 젓갈, 김치, 장아찌, 장조림 같은 것이 음식물의 조리법이고, 이 모두는 반찬이라는 분류법으로 총칭할 수 있다. 사전적으로 반찬은 주식(밥)과 함께 먹는 부식으로서의 음식을 말하고 있으므로 생선이나 고기등의 구이와 찜, 국 등도 반찬으로 분류한다. 위키백과에는 찌개나 전골, 전류도 반찬으로 표기해 놓았다.

서양권에서는 반찬의 개념이 희박하고 요리의 개념만이 발달했다. 반면에 동양에서는 어느 정도 반찬의 개념이 있다. 중국에는 짜샤이가 있고 일본에도 베니쇼가(생강초절임)와 다꾸앙이 있다. 그러나 그것들은 기름기 있는 음식을 먹는 중간 중간에 입을 씻어주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를 요리라고 볼 수는 없는 것들이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수준이다.

한국의 반찬은 그것 이상이다. 밥과 반찬만 있어도 훌륭한 식사가 된다. 작은 종지에 담긴 하나하나가 요리에 가까운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가장 전통적인 한식 형태인 반상차림을 생각해보자. 수라상은 십이첩반상, 사대부집 또는 양반집은 구첩반상을 최고의 상차림으로 한다. 구첩 이하는 보통 홀수로 하여 칠첩 ·오첩 ·삼첩 순으로 나눈다. 결국 반찬의 가짓수를 말하는 것이다. 반상의 등급이 반찬의 가짓수에 따라 달라지는 전통이 있다는 것이 흥미롭다. 한국은 메인요리로 음식의 등급을 드러내는게 아니라, 반찬의 숫자로 나타내었다.

그 말은 한국의 반찬이 단순한 피클 같은 개념이 아니라, 종지에 하나하나 담긴 것들이 작은 요리에 가깝다는 의미다. 그런 의미에서는 스페인의 타파스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반찬들이 독립적인 음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전부 밥과 함께 시너지 효과를 낸다는 점에서 타파스와 다르다. 반찬은 ‘함께 먹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하나의 종합체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반상 차림에서 비롯된 현대의 ‘한정식’도 결국은 반찬들의 집합이며, 비빔밥도 결국은 밥위에 반찬을 올려 섞는 것이다. 따로 메인 요리가 등장하더라도 한식에는 반드시 그에 따르는 반찬이 있다. 갈빗집에 가서 고기를 구워도 동치미와 무절임은 나오고, 설렁탕 한그릇을 먹어도 김치와 깍두기는 반드시 나온다. 그것들을 함께 먹어야 음식이 완성된다는 메시지다.

우리가 이 반찬 먹는 개념에 얼마나 익숙해져 있는지 생각해보자. 한국인들은 피자를 먹을 때도 피클을 마치 김치 집어 먹듯이 입에 함께 넣고 먹는다. 그 때문에 우리는 이태리 음식점 가서도 피클 더 달란 얘기를 자주 하지 않는가. 외국인들은 그렇게 안먹고 그냥 가끔 입맛을 돌게하는 용도로 먹기 때문에 피클이 많이 필요 없다. 우리는 치킨을 먹을 때에도 무절임을 꼭 함께 먹는다. 외래 음식을 먹을때에도 반찬을 먹는 감각으로 먹는 것이다. 나는 심지어 다음과 같은 장관도 목격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와 스프, 피클 등을 한상 가득 주문해놓고 고기를 씹으면서 스프를 떠먹고, 다시 입속에 피클을 넣는 모습이다. 여러 음식을 함께 먹는 한식의 식사법이다.

일본은 반찬의 개념이 비교적 한국과 유사한데, 그런 일본에 가서도 한국 사람들은 ‘반찬에 따로 돈을 받는다’고 자주 불평한다. 일본의 반찬은 어디까지나 ‘옵션’의 성격이 강하지만, 한국인들은 반찬을 밥이나 요리와 떼어놓을 수 없는 한 몸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그만큼 한국 음식에서는 반찬의 비중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 음식에는 ‘궁합’이라는 개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한식에서는 밥이나 메인 요리를 먹으면서 동시에 적당히 짭짤한 반찬을 집어먹는 방식이 기본이다. 따라서 ‘무엇과 무엇을 함께 먹으면 어울린다’는 개념이 익숙하다. 이것은 사실 세계적인 관점에서는 상당히 독특한 감각이다. 음식의 궁합을 요리사가 전부 정해 놓는게 아니라, 어느정도는 먹는 사람이 생각해야 한다. (서양식은 이런 조합이 전부 요리사의 몫이라서 라따뚜이에 나오는 것처럼 Suprise me!같은 소리도 나올테지만...) 외국인이 ‘김치’를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많은 외국인들은 그냥 달랑 김치 한 조각만 입에 넣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마 그들 중 대부분은 김치가 맵고 짜기만 한 음식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제대로 김치를 먹는 방식이 아니다. 김치는 기본적으로 밥이나 다른 음식과 함께 입안에 들어가야 비로소 제대로 된 맛이 나는 음식 아니던가. 그렇게 먹으라고 만들어진 음식이다.

한국인은 이 방법을 알기 때문에 설령 김치만 집어 먹어도 머릿속에서 ‘밥과 먹으면 어울릴 맛이로구나’하는 계산이 직관적으로 나온다. 반찬은 항상 그렇다. 한식에 익숙치 않은 외국인들은 아마 비리고 짜디짠 젓갈을 맛보면 기겁을 할 것이 틀림없다. 밥과 함께 적절한 비율로 먹는 토하젓이나 어리굴젓, 게장의 풍미를 상상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중에 따로 이야기하겠지만, 내가 항상 고평가하고 있는 한국 음식이 바로 ‘나물’인데, 이것 역시 나물 하나만 달랑 놓고 봐서는 볼품도 없고 별 의미도 없다. 하지만 시금치, 냉이 등을 살살 데쳐놓고 쑥이 들어간 된장국에 달래, 돌나물 등을 가볍게 무친 것을 생선이나 고기 같은 단백질 요리와 곁들여서 밥과 함께 먹는다면, 이게 바로 한국 음식의 묘미로구나 하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자연스럽게 음식 앞에서 ‘궁합’을 생각하는 감각이 길러져 있다. 갈비에는 동치미, 설렁탕에는 깍두기, 돼지고기에는 새우젓, (내 경우에는 시래기 된장국에 참치 통조림. 엄청 맛있다) 이런 식의 잘 알려진 ‘찰떡 궁합’ 목록이 이미 우리에게는 수십 개 이상 있지 않은가. 잘 준비된 한식은 이렇게 훌륭한 조합의 재료를 여러 개 마련해 놓은 밥상이다. ‘이 요리, 혹은 이 밥과 어울리는 것들이 여기 많이 있으니까, 하나하나 맛보고 그 어울림을 즐기십시오’라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이다.

한식은 작은 종지에 담긴 반찬들의 하모니를 연주하는 오케스트라와 같다. 혹은 밥상위의 반찬들을 조합하여 훌륭한 맛을 찾아내는 흥미로운 화학실험실과도 같다. 서양에도 와인과 음식의 ‘마리아주’의 개념이 있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한식에 그 ‘마리아주’가 훨씬 뿌리깊이 박혀있는 셈이다.

나는 최근 주위의 많은 한국 사람들에게 ‘좋아하는 한국 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보았다. 의외로 반응이 재미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제법 길게 고민하다가 ‘집밥(?)’이라거나 ‘백반’이라고 이야기 했고, 또 다수의 사람들이 된장찌개, 비지찌개 등의 찌개류를 이야기했다. ‘집밥’ 혹은 ‘백반’이라고 이야기한 그들은 ‘다양한 반찬과 밥의 종합체’를 뭐라고 부를까 고민하다가 그렇게 말했을 것이다. ‘찌개류’를 좋아한다고 말한 사람들도 사실은 ‘된장찌개 하나’만 좋아한다는 것이 아니라 함께 나오는 밥과 반찬들의 종합을 생각하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결국은 밥과 반찬, 그것들을 함께 먹는게 한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한식이 아닐까 싶다.




덧글

  • harbin 2010/07/08 21:30 # 답글

    세상에.... 별 생각없이 스쳐가는 것에도 '의미' 부여가 되니 놀랍습니다.
  • 박혜연 2010/11/08 14:15 # 삭제 답글

    전세계에서 밥과 국 각종 반찬들이 수두룩하게 차려져있는나라는 오로지 대한민국뿐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래서일까? 보통 해외여행을 특히 단체여행을 많이하시는 고령의 어르신들은 주로 일본이나 중국 대만 홍콩 혹은 동남아지역으로 주로 여행을 많이 가시는데 이유는 음식때문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솔직히 대한민국이나 일본만 벗어나면 전부 기름기있고 짠음식들이 주류인 나라들이니 당연한거죠!
  • 2015/07/21 11:3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장민기 2016/04/19 21:11 # 삭제 답글

    오랫만에 공감되는 좋은 글을 읽었네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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