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둘러보기 기행

영화제도 둘러보고 비빔밥도 한 술 뜰 작정으로 내려간 전주. 사실 작년 영화제 기간에도 갔었기 때문에, 일부러 의식하지 않아도 1년간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시내야 별 다를 게 없었다. 영화제의 분주한 스탭들을 제외하면 술집 몇 개 더 생긴거 외에는 지방 도시다운 고즈넉함까지 느껴졌다. 그렇지만 80년대 강남에 아파트 들어서듯 1년 만에 팍팍 바뀐 다이나믹한 곳도 있었으니, 그곳은 놀랍게도 전주 한옥마을이다.

작년만 해도 각목과 자재가 쌓여있던 공사터가 꽤 많이 보였었는데, 올해엔 못 보던 한옥이 많이 생겼다. 한옥마을을 꿰뚫는 태조로를 쭉 걷다보면, 제법 번듯한 전통 마을 하나가 생긴 느낌이다. 대부분 새로 만든 한옥이라 너무 깨끗해서 어딘가 테마파크같은 느낌이 약간 들긴 한다. 그렇지만 어떤 전통이든 ‘시작’과 ‘발전’은 있는 법이니까, 전주는 그 단계를 겪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위치가 좀 애매하단 생각이 든다. 전주엔 ‘풍남문’이란 성문이 있으니 성곽으로 둘러쌓인 마을이었을 게다. 그럼 성 안쪽이 전통적인 번화가일테고, 바깥쪽이 변두리일테다. 실제로도 지금의 전주 시내는 풍남문 안쪽에 있다. 그런데 한옥마을은 성문 안에 있는게 아니라 성문 밖에 있는 것이다. 그것부터 뭔가 ‘전통적으로 형성된’ 곳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마치 서울의 '한옥마을'이 사대문 안쪽이 아니라 강남에 있는 느낌이랄까.

그런데 알고 보니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었다. 일제시대때 일본 상인들이 전주에 많이 들어왔었고, 급기야는 전주 중심가의 상권을 장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서 밀려난 한국인들이 1930년을 즈음해서 성밖의 풍남동 일대에 한옥촌을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미묘한 한옥마을의 위치도 말이 된다. 오히려 근대화를 거치면서 전주 시내는 빌딩이 들어선 평범한 도시의 모습이 된 반면, 성 밖의 한옥촌은 그 명맥을 이어올수 있게 된 이유가 된다. 더구나 그쪽은 ‘태조 어진’, 그러니까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의 초상이 있는 경기전이 자리잡고 있다. 얼핏 생각하면 일부러 만든 ‘민속촌’같은 곳처럼 보일수도 있지만, 사실은 나름대로의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구역이다.

도로는 아주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고, 거리도 바둑판 형태로 설계되어 있었다. 건물들은 제각각 술 박물관이나 전통 문화 체험관 등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다. 상하이에서 봤던 치바오 마을을 연상시켰다.

가운데 삐죽이 솟은 이곳이 바로 술 박물관이다.



술 박물관 입구도 내부도 상당히 으리으리하다. 그치만 저 위에 보이는 목어가 약간 생뚱맞아 보이긴 한다. 여기엔 술 빚는 도구와 유물들이 몇 점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중에 재미있었던건... 

이것이다. 술 익히는 모습을 재현해 놓았다. 바닥에 받치고 있는 나무 판때기는 술 항아리와 땅바닥이 직접 닿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땅은 온도 변화가 밤낮으로 크기 때문에, 항아리에 직접 닿으면 술이 제대로 숙성이 안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1670년에 씌인 음식디미방에도 저런 방법에 대한 언급이 있으니, 그 옛날 부터 술빚는 작업은 굉장히 신중했던 것 같다. 이 곳이 박물관으로 끝날게 아니라 진짜 양조장 역할을 했으면 참 좋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밖으로 나오니, 작은 골목이 나왔다. 흙으로 만든 토담이 귀여웠다. 


어떤 곳에는 이런 식으로 기와를 넣어서 데코레이션을 해놨다. 요새 지은 한옥에는 저게 유행인 모양이다. 북촌에서도 저런걸 몇개 봤지만, 전주에는 상당히 많이 보였다. 아마 창덕궁에 벽에 있는 무늬에서 힌트를 얻은 것 같다. 글쎄, 어쩌면 누군가는 저런 장난(?)을 백안시 할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현대의 한옥 건축에도 유연성을 좀 부여해주고 싶다. 어차피 여기의 한옥은 전부 현대 한옥이다. 가장 오래된 것도 1930년대 정도에 지어진 것이다. 너무 전통 한옥의 형태에 집착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이런 기괴한 건물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지만...... 이것도 전주 한옥마을 내에 있는 건물인데, 일단 전체적으로 일본풍이다. 게다가 벽을 자세히 살펴보면 기왓장으로 그림을 그려놨다!!! 왼쪽과 지붕 쪽의 물결, 그리고 오른쪽의 펭귄(?)을 보라....

한옥마을 내부의 건물들은 대체로 민박집이나 음식점, 기념품 가게였다. 민간이 아니라 지자체에서 지은듯한 건물도 꽤 있었다. 
찻집과 소머리국밥집(;;)이다. 사진에는 안나왔지만 소머리국밥집 안에는 진짜 가마솥이 몇개 있었다. 아마도 거기에서 국밥을 끓이는 모양이었다. 아주 훌륭한 선택이라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이곳은 '아세헌'이라는 꽤 큰 한옥체험관이다. 숙박 뿐만 아니라 전통 음악과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서비스도 제공하는 모양이다. 이런 한옥 숙박 업소가 상당히 많다. 한옥 특성상 건물은 커보여도 방이 몇개 없는 경우가 많으니 예약을 하는게 좋을 것이다.

전체적으로 한옥 찻집이 굉장히 많았다. 전통차부터 커피 전문점 까지 다양하다. 그 가운데 이렇게 통유리로 된 현대적인 찻집도 간혹 있다. 나는 여기에서 커피를 마셨다. 왜냐하면...
이렇게 창 밖으로 다른 한옥들의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다.
전주 한옥마을의 거리에는 독특한게 하나 더 있다. 사진에서 보이는 것처럼 길 섶에 작은 도랑이 파여 있는 것이다.

실제로 물이 흐른다. 좀 지나치게 인공적인 느낌이 청계천을 연상케 한다. 혹은 광화문 광장 양 사이드에 있는 기묘한 실개천(?)같은걸 떠올리게 한다. 구불구불한 곡선마저도 좀 인위적이어서 썩 맘에 들진 않지만, 그래도 물이 흐르는 모습이 구경꺼리는 된다.

덤으로 거기엔 잉어도 산다. 당연히 어디서 사와서 풀어놓은 거겠지만...

한옥 마을 끄트머리에는 경기전이 있다. 조선의 왕족인 전주 이씨의 발상지라고 해서, 어진을 넣어놓고 전각을 만들어 놓은 일종의 성역이다. 종묘와 비슷한 느낌을 주는 그런 신령한 건물인데, 지금은 공원처럼 되었다. 홈리스들이 벤치에서 잠도 자고 그러는 모양이다.

역사에 관심이 있다면 태조의 어진을 직접 볼수 있다는 의미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곳의 볼거리는 역시 이 대숲이다. 규모는 작지만 쭉쭉 뻗은게 이쁘게 잘 자랐다. 주변 어른들이 '거 대나무 참 좋다'하고 추임새를 놓으며 지나가는 걸 몇차례나 들었다;;.
  

조용하고 멋진 곳이다. 사진에서도 대숲에서 불던 서늘한 바람이 생각나는 것 같다.

나는 한옥마을을 둘러 보고 상당히 기분이 좋았다. 거기에 엄청난게 있어서가 아니다. 당장 거기에 쿄토의 전통마을 같은게 뚝 떨어질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다만 전주에서는 '무언가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다들 완전히 무관심한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예전의 나였으면 '이건 이래서 별로고 저건 저래서 틀렸고'하는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글쎄, 지금은 그저 그 모든 시도가 다 가치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야 '무언가가 만들어 지기' 때문이다.



덧붙임. 저녁엔 막걸리를 마시러 갔다. 안주가 많이 나온단 소릴 듣긴 했지만 직접 본 소감은, '명불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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