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인들에게 ‘소주’가 무어냐고 묻는다면, 대개는 ‘서민들의 위안거리가 되는 대중적인 술’이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대표적인 한국 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테고, ‘싸고 쉽게 취하는 술’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보다 좀 더 자세히 알고 있는 사람은, 소주의 역사에 대해 간략하게 이야기 할는지도 모른다. 예컨대, 소주는 고려시대에 몽고에서 들어왔으며 청주를 증류한 증류주라는 것이다.
혹자에겐 의아스럽겠지만, 위의 이야기는 전부 정답이라고 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소주’라는 개념 자체를 한가지로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팔리는 소주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식 소주로 나누어져 있는데,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참이슬’, ‘처음처럼’과 같은 ‘일반적인 의미에서의 소주’는 모두 희석식 소주다. 이제는 ‘소주’라고 하면 희석식 소주를 일컫는 말이 되어버렸고, 증류식 소주란건 개념 자체도 모르는 사람이 많아져 버렸다.
원래 전통적인 소주는 증류주다. 증류주란, 청주와 같은 양조주를 끓여서 증발한 알코올을 받아낸 독한 술을 말한다. 원래 술을 증류하는 기술은 페르시아에서 발생했다고 하는데, 한반도로 전해진 것은 알려진 것처럼 고려시대 몽고를 통해서다.
그렇지만 지금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참이슬, 처음처럼 같은 희석식 소주는 이 같은 전통적인 증류법과는 별 상관이 없다. 한마디로, 우리가 소주라고 부르고 있는 그 술들은 한국의 전통주와 사실상 관계가 없다는 소리다. 굳이 말하자면 희석식 소주의 조상은 19세기 중반 영국에서 발명된 연속 증류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연속 증류법이 일본으로 건너와 1910년 일본 에히메 현에서 최초로 희석식 소주인 ‘일(日)의 본(本)’이 등장한다. 그리고 그 일본의 희석식 소주가 한국으로 건너와서 아직까지 계승된 것이 바로 참이슬인 격이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참이슬 뚜껑을 까면서 ‘일본에서도 소주를 마시나?’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사실 우리가 마시는 희석식 소주 기술은 일본에서 온 것이다.(-_-)
다음은 신동아 기사의 일부다.
<한국인들이 희석식 소주를 즐겨 마시기 시작한 때는 그리 오래지 않다. 희석식 소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연속 증류를 할 수 있는 기계가 필요하다. 이것이 한반도에 전해진 것은 대략 1930년대 전후다. 당시 일본에서 유행하던 연속 증류기를 일본인 주류제조업자들이 들여와 술을 생산했다. 1937년 11월3일 ‘동아일보’에는 ‘신식소주대증산(新式燒酒大增産)’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렸다. “조선의 신식 소주는 1932년경에는 7만여 석에 불과하더니 매년 증대하여 1936년에는 18만7000석에 달했다”고 했다. 여기에서 신식 소주가 바로 연속 증류기에서 생산한 소주다.>
- 2008년 4월 17일, 신동아, ‘쇼추텐고쿠(燒酎天國)’ 가고시마… 한국 소주는 슬프다
내막을 아는 사람 중에 시니컬한 사람은 ‘소주야 말로 일제 잔재’라고 말하기도 한다. 희석식 소주에 한해서라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러니까, 참이슬을 가져다 놓고 ‘한국 술’이라고 말하는 것은 냉정하게 말하면 좀 멋쩍은 일이다. 전통과는 별 관련도 없는데다가, 술로서의 퀄리티마저 떨어지는 술에게 '국가대표' 타이틀을 줘서야 되겠는가.
희석식 소주는 사실 알코올에 물을 탄 것에 불과하다. 연속 증류기는 원료에서 순수한 에탄올을 뽑아낼수 있게 해준다. 거기에는 탄수화물을 가진 원료라면 무엇이든 사용된다. 값싼 재료를 쓰기 위해 최근에도 주로 타피오카, 사탕수수 등이 사용되며 쌀이 들어가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당장 참이슬 뒷면의 원료를 확인해 보라. 전통적인 술 재료인 쌀과는 관련도 없고, 전부 수입산이기 때문에 우리 농업의 매출에도 아무런 도움이 되질 못한다.
원래 전통적인 방식의 단식 증류기에서 양조주를 증류하면 50도 안팎의 증류주가 나온다. 위스키나 브랜디, 전통 소주 등 대개의 증류주가 40~50도 사이인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연속 증류기에서는 에탄올 농도 95% 이상의 ‘주정’이라는 원액이 나온다. 그 주정에 물을 타서 희석시키면 그게 바로 우리가 마시는 희석식 소주다. 증류 과정에서 재료가 갖는 개성과 풍미는 모두 사라지고 그냥 균질한 에탄올만 나오는, 굉장히 ‘공업적’인 과정이다. 알코올 농도가 높은 소주가, 맥주나 막걸리보다도 제조원가가 싼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이 에탄올 덩어리에 물만 섞으면 알코올 맛이 강해 먹기가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희석식 소주엔 스테비오사이드, 올리고당 등등의 감미료가 반드시 들어간다. 광고에서 이효리가 병을 흔들어대며 노래 부르거나, 대나무 필터로 몇 번을 걸렀다고 어필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다 이렇게 에탄올을 희석한 맛을 순화하기 위해서다.
단언하자면, 이 희석식 소주를 놓고 ‘고려시대에 전래된 한국의 전통 술’이라고 말하는 건 어불성설이다. 말하자면 '물을 탄 양조용 알코올'정도라고 불러야 마땅할까. 이런 희석식 소주가 ‘소주’라는 이름을 꿰차고 한국의 대표술 노릇을 하고 있는 건 안타까운 일이다. 전통의 문제를 차치하더라도, 연속 증류기에서는 재료의 향이 모두 사라지고 그저 에탄올만 나온다. 그러니까 희석식 소주는 술의 풍미가 완전하게 사라진 술이다. 그저 나중에 첨가하는 감미료 맛 뿐이다. 그러니까 소주는 그냥 ‘취하려고 마시는 술’ 이상이 되려야 될 수가 없는 것이다.
하지만 ‘희석식 소주’가 아닌, 고려시대 들어온 이후로 내려오는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라면 이야기는 좀 다르다. 사실 증류식 소주야 말로 진짜 소주라고 불리워야 될 소주다.
물론 희석식 소주도 나름대로의 가치는 있겠지만, 알고 마시는 것과 모르고 마시는 것은 큰 차이가 있는 법. 다음 번에는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와, 위스키(싱글 몰트와 그레인, 블렌디드), 그리고 일본 소주에 대해 좀 써보겠다.



덧글
그 소주로 떼돈을 벌고 있는 업자들이나, 마찬가지로 소주에 세금을 매겨서 떼돈을 벌고 있는 국세청이나 일제가 없었으면..ㅠㅠ ;;;
희석식 소주의 재료가 아무 거나 다 가능하다니 놀랍군요... 게다가 무조건 싼 재료를 찾아서 그 재료를 쥐어 짠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아울러 그걸 좋다고 마셔주는 나도 놀랍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