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 권의 레스토랑 "THE SPICE" 기행


일단 밝혀두자면, 나는 지난해 여름께 케이블에서 방영된 'YES Chef' 를 굉장히 재밌게 봤다. 처음엔 '헬스 키친' 짝퉁 정도려니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오묘한(?) 재미가 있었다. 완성도가 높았기 때문이 아니라, 아마도 한국에서 그런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는 신기함 때문에 꼬박꼬박 봤던 거 같다.

그러니까 자연스럽게 에드워드 권이란 '셰프'에 대한 기대감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의 레스토랑이 생긴다면 한번 가봐야겠다고 내내 생각했었다. 그러다가 지난달 초순, 한강진 역 부근에 인상적인 건물이 하나 들어선 걸 보게 되었다. 리움 맞은 편에 '패션 5'라고 팬시한 디저트 가게 하나가 있는데, 그 바로 옆이다. 건물 중간에 큼지막하게 EK(에드워드 권의 약자다)라는 상호가 붙어있었다. 나는 지나가면서 조용해 생각했다.

'드디어 올것이 왔구나.(-_-)'

직접 가본 것은 지난 달인 5월 하순이다. 가게 한켠에 디제이도 있고, 칵테일 파는 바도 있고 한, 요새 유행하는 애매모호한 스타일이란 정보는 듣고 갔다.

밥 먹으러 와서 이런 분위기를 마주치는 건, 나에겐 좀 낯설다. 조명 색깔이 지나치게 강했다. 코스만 팔고 예약제로만 이루어진다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았다. 그리고 상당히 '시끄러웠다.'
팝아트 느낌의 그림들이 몇 점 '천장에' 걸려 있었다. 고개 아프게 올려다보면서 느낀건, 역시 리히텐슈타인 그림은 인기가 많구나... 정도?

코스 요리를 주문할 때면 내가 항상 떠올리는 말이 있다. 코스는 중간걸 시키는게 젤 합리적이라는 격언(?). 그래서 위에 보이는 45500원짜리 '익스클루시브'를 주문했다.

전체는 무려 구운 거위간(푸아그라)이다. 어학연수 시절에는 마트에서 파는 싸구려 '파테(간 따위를 갈아서 크림처럼 만든것)'는 좋아해서 자주 먹었다. 그때가 생각나는 맛이다. 물론 그것보다야 훨씬 부드럽고 고소하다. 젤리, 딸기 리덕션(끓여서 졸인 것) 등 달콤한 것과 같이 나오는데 고소한 맛이랑 어울린다.

빵조각도 같이 먹으라고 옆에 떨궈놨다. 같이 먹으니 과연 바삭하고 맛있었다. 거위간의 부드러운 식감과 조화를 이룬다.

다음은 가지 캐비어와 카라멜 양파, 포치니 벨루테. 접시에 재료가 담겨 나오고 그 위에 흰 거품있는 수프를 부어준다. 이 흰 거품 소스를 벨루테라고 하는 모양이다. 벨벳처럼 부드러운 식감이 특징이라는데, 거품이 많아서 확실히 부드럽긴 하다. 하지만 거품이 가득한 걸 떠먹는 느낌이 나한테는 좀 어색했다.



메인 요리인 와규 갈비와 감자 수플레. 수플레는 '부풀다'란 뜻인데, 계란 흰자와 감자 같은 재료를 섞은 반죽을 오븐에 넣고 부풀리는 요리다. 서빙하는 사람이 저 수플레는 한시간에 대여섯개 밖에 못만들만큼 정성이 들어가는 요리라고 생색을 냈다.

이게 그렇게 정성이 들어간다는 감자 수플레. 얇은게 바삭하고 좋았다.

와규 갈비는 역시 부드럽다. 브레이즈(서양식 조림)라고 하는데, 결대로 으스러지는 감촉이 잘 만든 갈비찜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와규 '갈비'가 큰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든다. '와규'라고 하면 '서리가 내린 듯한 마블링'의 등심이라는 이미지가 있는데, 메뉴 중에 와규 등심이나 안심 스테이크는 없는 것 같다. 그런건 더 비싼데 가야 먹을수 있나보다.

디저트다. 바닐라 무스와 파인애플, 그리고 초콜렛 크런치. 디저트 맛이야 뭐 달콤하니까 비슷하지만, 식감이 어우러지는게 독특했다. 바닐라 무스는 부드럽고, 파인애플은 아삭거리고, 초코 크런치는 좀 씹히는 맛이 있고.
맛보다도 먹는 재미가 있었다고 해야 하나. 세가지의 다른 텍스처를 동시에 씹는 재미가 있었다.

식사할때 같이 먹은 빵이다. 빵이 독특하다. 그냥 곡물맛이 나는게 아니라 서남아시아 풍의 오묘한 향이 난다. 특히 오른쪽에 저 소스는 완두콩 갈아만든 맛인데, 아랍 음식 먹을때 자주 느껴지는 그 맛이다. 이름은 잘 모르겠다. 두바이에서 배워온 모양이다.

'The SPICE' 의 전체적인 느낌은 상당히 캐주얼 하다는 것. 인테리어나 분위기가 바로 옆에 있는 '패션 5'와 비슷한 느낌이다. 아가씨들이 좀 차려입고 수다떨러 가는 장소 같달까. 저녁 코스 요리인데 값도 그렇게 비싸지는 않다.

맛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맛도 맛이지만 전체적으로 '식감'을 중요시 하는 요리가 많았다는 느낌이다. 말랑함과 바삭함, 벨루테 거품의 부드러움, 공기가 들어간 수플레와 연한 고기, 앞서 말한 디저트의 식감 등등, 전체적으로 먹는게 '재미있는' 요리들이다. 한국 사람들한테 익숙한 느낌은 아니다. 나에겐 새롭고 괜찮았다.   
 
여러가지 면에서 기대와 달랐다. 기대에 '못미쳤다'기 보다는 '달랐다'는 표현을 써야겠다. 에드워드 권은 서양식 요리를 더 대중적으로 즐길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길 바라는 모양이다. 예전 백화점 푸드코트에 가게를 하나 작게 내면서 그런 요지의 이야기를 했던 것이 기억 난다. 그건 나도 굉장히 바람직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한국 외식 문화의 전반적인 소비 수준이 넓어질테니까 말이다. 서양 요리라고 해서 마냥 비싸다고 여기고 벌벌 떨어가며 먹는건 사실 나도 맘에 안든다. 나중에는 이태리식 뇨끼도 떡볶이 먹는 감각으로 소비할수 있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아마 그때 쯤이면 한국의 요리 수준 자체가 꽤나 높아져 있지 않을런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며 자켓을 받아들고 밖으로 나왔다.




덧. 코스 중간에 송로버섯 크림이 들어간 샐러드 같은게 있었다. '이게 그 돼지를 괴롭혀 가며 캐낸다는 송로버섯인가...' 하며 그만 과도한 탐구욕이 앞서는 바람에 사진을 못찍었다....;;

덧글

  • 카이º 2010/06/16 16:32 # 답글

    권셰프가 한국에 내는 음식점의 모토가 딱 그거라더라구요
    '가격거품 없이 맛있는 음식 맛볼 수 있는'..이라던가?
    역시나 다른 비싸고 보통의 맛을 내는 가게들과는 달라보여요
    하지만 그래서 그런지 분위기는 정말 캐쥬얼하긴 하네요~
  • 낯선이름 2010/06/17 03:35 # 답글

    휑한 롯데리아

    평양면옥 서버

    코엑스 푸드코드 인테리어

    에서 5만원짜리 점심이라..
  • 필로테스 2010/06/18 12:57 #

    '평양 면옥'은 어떤 의미에서 대명사가 되었군요? ㅋㅋ
  • 브루클린델리 2010/06/24 22:20 # 삭제 답글

    인테리어가 너무 고급스럽다 보면 ...오는 사람들이 제한적이게 되죠 ..또한 외관만 보구 분위기에 지레 겁먹고 가는 분들도 많습니다
    조명또한 ..음식을 가장 이쁘게 보일수 있는 색감이라죠 ㅎㅎ

    전체적으로 뉴욕스타일 레스토랑 느낌 ?
  • 푸디 2010/07/08 19:28 # 삭제 답글

    저 여기 가보려고 벼르고 있습니다. 예스 셰프도 재밌게 봤고 신세계의 카페도 음식이 참 좋았기 때문에 음식에 대한 기대도 있지만 한국에서 여러가지 다양한 시도를 해 보고 있는 권셰프의 노력이 저는 참 멋지다고 생각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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