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 이야기 (2) 한식이야기

허영만의 '식객'에서 인용한 그림

술을 증류하는 것은 고도의 기술을 요구하는 일이다. 알코올과 물의 끓는점이 다르다는 걸 이용하여 술에서 알코올만 뽑아 '농축된' 술을 만드는 것이다. 알코올의 끓는 점이 78도 남짓이니, 그림처럼 장치해 놓고 80~90도로 가열하면 이론상으로는 알코올 성분만 증기가 되어 빠져나간다. 그걸 받아내면 진한 알코올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소줏고리에 맺히는 알코올을 방울방울 받아낸 게 바로 소주다. 물방울이 맺히는게 이슬처럼 보이므로, 과거에는 '이슬 로'자를 써서 노주露酒라고 부르기도 했다고 한다. 대표적인 소주 회사인 '진로', 그리고 진로를 우리말로 읽은 '참이슬'이란 이름도, 바로 소주를 증류하는 모습에서 모티브를 얻은 이름일게다. (물론 참이슬은 절대 증류식으로 만드는 술이 아니니 이름에 속으면 안된다;; 참이슬의 정체는 지난글 참조) 

청주는 덧술을 계속하여 세번 정도 하면 진해지는데, 그래봤자 발효주는 알코올 도수가 20도를 넘을 수가 없다. 그 이상의 알코올 농도에서는 효모가 죽어버리기 때문에 발효가 진행되지 않는다. 더 센 술을 얻으려면 반드시 증류를 해야 한다. 그런데 전통적인 사회에서 정교하게 알코올만 뽑아내는 것이 무척 어려운 일이었다. 발효주를 끓이는 과정에서 생기는 탄내나 이물질이 포함되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물론 거기에서 재료의 풍미도 생기고 소주의 매력도 생기는 거지만, 동시에 잡맛, 이취, 증류취 라고 부르는 불쾌한 냄새도 들어간다. 증류주를 만드는 사람들의 고민은 항상 이것이었다. '이취를 어떻게 줄이느냐!'

생각해보면 묘하게도 증류주가 발달한 지역은 대개 고원 지대다. 대표적인게 스코틀랜드의 하이랜드. 위스키로 너무나 유명한 지역이다. 한국에서도 전통적으로 소주가 발달한 지역은 해발고도가 높은 이북이다.(진로도 이북 출신이 세운 회사다) 요새 신데렐라 언니로 유명해진 '참살이 탁주'를 만드는 회사는 이름도 무려 '남한산성 소주'다. 

고지대에서 증류주가 잘되는 이유를 설명하는 몇가지 이야기가 있다. 술에 부과되는 높은 세금을 피하기 위해 산속으로 숨어들어 갔다는 얘기도 있고, 고지대에서는 누룩이 잘 만들어진다는 얘기도 있지만, 더 재미있는 얘기는 따로 있다. 바로 고지대에서는 끓는 점이 낮다는 얘기다.

예전 화학시간을 잘 떠올려 보자. 기압이 낮을 수록 끓는 점도 낮아진다고 배웠다. 꼭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언급하는 사례가 '산에 올라가서 밥을 하면 밥이 잘 안된다'는 거 아니었던가? (생각해보면 산에서 밥하는 건 불법이건만...) 증류 과정에서는 그게 오히려 잇점이 된다. 그러니까 고지대에서는 알코올의 끓는점도 낮아져서, 상대적으로 다른 이물질 타는 향이 덜 들어간다는 것. 그래서 스코틀랜드와 같은 고지대에서 위스키가 발달했다는 이야기다. 

이 원리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 바로 '감압식 증류기'이다. 증류기 내의 기압을 인위적으로 떨어뜨려서, 낮은 온도에서도 알코올이 끓게 만드는 것이다. 감압식 증류기 내에서는 30~40도의 온도에서 알코올이 끓어 오르는 기현상(;;)이 발생한다. 그만큼 이취가 덜 들어간, 비교적 깨끗한 알코올을 얻을 수 있다. 그 반대로 일반적인 기압에서 증류하는 것을 상압식이라고 부른다. 소줏고리로 만드는 옛날식 증류는 물론 상압식이다.

허영만의 만화책 식객의 한 장면이다. 여기선 상압식이 더 좋다고 말하지만, 내가 보기엔 '글쎄올시다'다. 예전엔 안동 소주 같은게 대개 상압식으로 만들어졌다. 지인 한 사람이 그런 전통 안동 소주를 구해서 보드카를 좋아하는 외국인 교수에게 선물했다는 얘기를 들은적 있다. 그런데 그 교수 왈 '냄새가 심해서' 못 마시겠다나. 확실히 상압식 증류는 이취가 강하고 정갈한 맛이 없어서 좋은 소주가 되기 어렵다. 최근의 고급 증류 소주는 전부 감압식 증류기에서 나온다. 대표적인게 프리미엄 소주를 자부하는 '화요'. 안동 소주도 4가지 브랜드가 나오고 있는데, 최근에는 감압식 증류기를 도입하고 있다고 한다. 다 그런지, 일부만 그런지는 잘 모르겠다.

옛날 방식 그대로 상압식 증류를 하는 방법은 굉장히 까다로워서 퀄리티를 기대하기 어렵다. 일단 소줏고리에서 술을 받아내는걸 세단계로 나누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초반에는 메탄올과 같은 독한 물질이 나오고, 또 후반에는 온도가 올라가면서 물이 끓기 시작해 소주에 수분이 많이 섞여 나오기 때문이다. 중간 술을 받아야 한다고 하는데 이걸 사람이 눈대중으로 받아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그래서 상압식 증류로는 좋은 퀄리티의 술이 대량으로 생산되기 힘들다. 그러니까 최근의 감압식 증류는 '개선된 전통 방식'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다음 번에는 내가 지난번에 혹평한 '주정'을 활용한 술에 대해서 한번 써 보겠다. 참이슬 같은 경우는 굉장히 과감(혹은 무식)하게 아예 주정을 희석해서 만든 희석식 소주지만, 사실 제대로 활용하는 방법도 얼마든 있다. 예컨대 '혼죠조'같은 사케는 청주에 주정을 적당히 섞는 술인데, 경우에 따라서 순쌀로만 빚은 '준마이'보다 나은 것도 있다고 한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위스키도, 말하자면 증류주에 주정을 섞은 술이다. 이런걸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하는데, 발렌타인이니 죠니워커니 하는게 다 블렌디드다. 자세한건 다음에.


소주이야기 (1) 보기

덧. 마트에서 보니까 롯데에서 나온 '천인지 오'라는 소주가 있던데, 이게 재밌게도 증류식과 희석식을 섞은 소주다. 일종의 블렌디드 소주라고 해야 되나. 조금 먹어보니 그냥 별로였는데, 앞으로 더 좋은게 나올수도 있을거 같단 생각이 들었다.

핑백

  • ...나의 단상 : <소주> 이야기 (1) 2010-06-29 02:46:38 #

    ... 있는 법. 다음 번에는 전통적인 증류식 소주와, 위스키(싱글 몰트와 그레인, 블렌디드), 그리고 일본 소주에 대해 좀 써보겠다.사진은 증류주를 만드는 소줏고리소주 이야기 (2) 보기 ... more

덧글

  • StarDust 2010/06/29 07:19 # 답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근데 산에서 밥을 하면 끓는점이 낮아서 밥이 설익는거 아니였나요?;;
    그래서 냄비에 돌을 얹느니 마느니 하는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은데(...)
  • 필로테스 2010/06/29 12:56 #

    아,, 그렇네요. 쓰다보니까 반대로 썼네요. ㅠㅠ 수정해야겠습니다
  • 대밋 2010/06/29 09:12 # 답글

    윗분 말씀처럼 높은 산에서는 밥이 잘 안됩니다. 압력솥에 밥을 하면 맛있는 것과 정 반대의 원리.
  • 필로테스 2010/06/29 13:03 #

    정신없이 쓰다보니 헷갈렸네요ㅠㅠ 맞습니다. 압력솥은 감압 장치와는 정반대의 도구죠.(;;)
  • numa 2010/06/29 12:09 # 답글

    ㅎㅎ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음 글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필로테스 2010/06/29 13:04 #

    감사합니다.^^ 다음 글은 좀 더 빨리써야겠네요..
  • rainkeeper 2010/07/09 20:25 # 답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다만 조금 이상한 부분들이 있는데, 한가지만 말할게요.

    "대부분의 위스키도, 말하자면 증류주에 주정을 섞은 술이다. 이런걸 '블렌디드 위스키'라고 하는데 발렌타인이니 죠니워커니 하는게 다 블렌디드다."

    증류주에 주정이든 당이든 제조과정에서 뭔가를 섞어넣는 술은 혼합주(칵테일)라고 부르는데, 대부분이 세계시장에서 굉장히 평가절하당하는 싸구려 술들입니다. '블렌디드 위스키'는 엄밀히 말하면, 몰트 위스키와 그레인 위스키를 적당히 섞은 것이지, 여기에 주정을 따로 (희석시켜서라도) 넣지는 않습니다. 그런 술(증류주에 주정 혹은 희석주를 섞은 술)을 블렌디드 위스키라 이름 붙여 파는 것은 영국 주류법상 불법행위입니다. 발렌타인이나 죠니워커 제조사가 듣는다면 펄쩍 뛸 음해죠.

    다만 일본이나 한국에서 만들어지는 '블렌디드 위스키'에선 그러는 것(이물질 섞기)이 일반적으로 널리 허용되고 때문에 그렇게 만드는 것 같더군요. 언급하신 사케 예처럼 양조과정에서 주정을 따로 첨가하거나,아예 주정을 원료로 삼아 당과 물을 그에 섞어 술이라고 만드는 것이 오히려 일반적인 양조문화 같습니다. 하지만 그건 엄밀히 말하면 가짜 블렌디드 위스키죠...
  • 필로테스 2010/07/09 23:20 #

    '말하자면'이라는 표현이 좀 부적절했던거 같네요. 몰트 위스키에 그레인 위스키를 섞는 행위를, '말하자면' 증류주에 주정을 섞는 행위라고 표현하려고 햇던 겁니다. 그레인 위스키를 주정에 비유하다보니 표현이 저렇게 되었네요. 그레인 위스키가 아무래도 소주나 사케에서 주정과 같은 역할을 하니까요...
  • 필로테스 2010/07/09 23:23 #

    조금 검색해 보니 그레인 역시 연속 증류기로 증류한 95% 에탄올의 주정이라는 정보가 있네요.
  • rainkeeper 2010/07/10 00:40 #

    글쎄요, 물론 그레인 위스키는 연속 증류를 거듭할수록, 도수를 높일수록 점점 더 특색이 사라진 주정, 즉 중성 에탄올에 가까워지긴 합니다. 하지만 설령 도수를 95%까지 올려 풍미가 다 날아간 그레인 위스키라도 중성 에탄올과는 엄연히 다릅니다. 만일 같다면, 아니, 설령 같진 않더라도 인간의 미각이나 후각으로 그걸 잘 구분할 수 없다면, 그냥 사탕수수에서 얻은 당을 염산 처리해 얻은 식용 에탄올을 희석해 그레인 위스키의 대용품으로 사용할 겁니다. 그쪽이 제조단가가 훨씬 싸게 먹히니까요. 하지만 그러진 않죠. (사실 이 부분은 1세기 전에 수십년간 법정공방이 벌어진 논란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인간이 그걸 감지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전통과 자부심의 문제인지도.)

    음, 굳이 그런 식으로 비유하고 싶으시다면, 그레인 위스키의 역할은 소주나 사케에서의 주정 역할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 즉 희석하는 '물' 역할입니다. (주정 역할은 몰트 쪽.) 양을 불리거나(일본 사케에서라면 후쓰슈에 해당하겠네요.), 약간만 넣어 몰트에 잠재된 풍미를 모조리 이끌어내는 용법(준마이슈. 하지만 이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준마이슈(오직 물과 쌀로만 빚은 술)가 아니라 혼조조슈(증류주에 주정을 섞은 후 대량의 물(물론 후쓰슈보다는 적은)을 타고 당을 첨가한 술)겠네요. 아무리 적은 양이라도 주정을 직접 술에 첨가하면, 그 술은 싸구려 혼합주가 되어버리니까. 그래서 제조사들이 들으면 펄쩍 뛸 음해라고 한 겁니다.
  • 필로테스 2010/07/10 04:22 #

    제 생각에는 블렌디드 위스키를 혼조조에 비유하자면 몰트가 '양조주' 부분이고 그레인이 '주정' 부분이라고 봅니다. 어디까지나 '진짜'와 '보조'의 역할이 있으니까요.

    그리고 사실 주정이라고 해도 완벽히 균질한 건 아닙니다. 국내에 주정을 만드는 회사가 10군데 가량 있는데, 술꾼들은 주정 맛도 은근히 구별해 낸다고 하더군요. '처음처럼'이 팔리기 시작한게 '참이슬'에 들어가는 주정과 같은걸 쓰기 시작한 이후부터란 말도 있고요. 주정 간에도 개성이 미미하게나마 있다고들 하니, 그레인 위스키도 차별화 되는 구석이 있겠죠. 다만 주정과 실질적으로는 거의 비슷한 물질이라는 것도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단지 어감의 차이 때문에 그레인 위스키를 주정처럼 취급한다고 해서 펄쩍 뛸 일은 아니라는 겁니다.

    확실히 '발렌타인은 주정을 탄 술이다'고 말하면 뭔가 질이 확 떨어지는 느낌이 오긴 합니다만, 그레인 위스키가 주정같은 입장에 있는건 사실이지요.

    ...그러고 보니 다음 차례에 쓸 내용이 댓글에 거의 다 나와버렸네요??
  • rainkeeper 2010/07/10 13:21 # 답글

    어감의 차이 때문은 아닙니다. 개인적으로는 그건 상당히 환원주의적이고 자의적인 용어 재해석과 그에 의거한 비일반적인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읽는 이에게 악의적이라고 쓰신 의도를 오해 사기도 쉽고, 이런 의미로 썼다고 매번 설명해줘야하니 낭비도 심하고요.하지만 글 쓰시는 분이 그런 의미와 맥락을 가지고 용어들을 굳이 사용하시겠다고 하신다면... 그 또한 글 쓰신 분의 존중 받아야할 선택이라고 생각합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 하이바짱 2010/08/20 16:13 # 삭제 답글

    ㅋ 참이슬 싫어하시나봐요. 다른 소주도 많은데 진로만 유독 찌르시는걸 보면.. ㅎ 어쨋든 잘 읽고 갑니다.
  • 필로테스 2010/08/24 12:14 #

    참이슬이 희석식 소주의 대표주자니까 언급한거지, 유독 싫어하고 그런건 없습니다. ㅋㅋ 참이슬은 또 그것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다고 생각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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