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 사회'에 대해 견해

1960년대 미국의 교육정책 중에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이라는 것이 있다. 흑인, 네이티브 아메리칸 등의 소수자들에게 일종의 대입 특혜를 주는 제도다. 역차별 논란이 거세게 일었지만, 지금 그 정책은 미국 정신의 근간인 ’기회의 평등‘의 상징으로 남아있다. 최근 소니아 소토마요르 같은 히스패닉계 여성 대법관이 배출된 것도 그 정책 덕이다. ’공정 교육‘, ’공정 사회‘ 등의 슬로건을 내거는데 그쳤더라면 결코 없었을 일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공정 사회’라는 말이 자주 들린다. 그러나 최근의 공정사회 논의는 ‘정치적 수싸움’의 선전 도구로만 열심히 소비될 뿐, 어디서도 진지한 목표는 보이지 않는다. 야당은 ‘공정사회’를 내세우면서 정권 흠집내기에만 몰두하고 있다는 혐의가 짙다. 사실관계를 악의적으로 왜곡한다는 청와대의 항의를 받기 일쑤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공정 사회’를 이야기하면서 DTI 규제를 일부 철폐했다. 불공정 경제의 아이콘인 ‘부동산 신화’를 연장하겠다는 의미다. ‘비즈니스 프렌들리’에서 ‘친서민정책’으로 일관성 없이 표류하는 태도도 문제다. ‘무엇를 위한’, ‘어떠한’ 공정사회인지가 도무지 중구난방이다. ‘공정 사회’ 논의가 대승적인 목표를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아전인수식의 명분 만들기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진짜 공정사회를 만들려면 공정사회란 말을 주문 외듯 되풀이 할 게 아니라, 산적한 현실 문제들을 칼같이 나누고 민주적 절차를 밟아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얼마전 트위터에서 드러난 입학사정관 문제가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제도를 손보고 입시 채널을 늘려 ‘교육의 공정’을 다질 일이고, 적절한 규제와 더불어 적극적인 서민 금융 및 일자리 대책으로 ‘경제의 공정’을 마련할 일이다. 공개 청문회에서 보여진 ‘심판’은 언제든 잊혀질 수 있는 단발성 행사에 지나지 않는다. 공정사회를 가능케 하는 것은 그런 단발성 행사도 아니고, 두루뭉술한 공정 사회 슬로건도 아니다. 정부가 귀를 열어 불공정한 지점을 적극적으로 파악하고, 제도적인 개선을 해낸다는 믿음을 주어야 진짜 ‘공정사회’다.



공정사회는 제대로 된 국가라면 반드시 추구해야 하는 이상이다. 공정 사회에 대한 논의 자체의 필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그러나 그것이 피상적인 구호에 머물러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대로는 그저 말 뿐인 ‘유행어’에 그칠 공산이 크다. 거품 낀 수사법을 걷어내고 정부의 ‘적극적인 행동’(Affirmative Action)을 보여줄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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