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떡밥. 식민지 근대화론의 전제. 견해


'식민지 근대화론'은 아주 미묘한 영역이다. 식민지 근대화론을 논하기 시작하면, 일종의 사상검증을 거치게 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식민지 근대화론자는 한국을 비하하는 '자학주의자'가 아닌가 하는 감정 문제에 일단 걸리는 것이다. 나는 이 사고방식 자체가 일종의 덫이라고 생각한다. '근대화는 매우 훌륭한 것이며, 그것은 반드시 자력으로 이루어져야만 가치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력으로 근대화를 못한 수많은 나라들은 전부 한 큐에 이류국가로 떨어지게 된다. 게다가 우리는 이류국가 취급을 받지 않기 위해 '한국은 자력으로 근대화를 할 수 있었다' 라는 것을 증명해야만 하는 '자존심의 숙제'가 생겨버린다. 잘라 말하건대, 그런 숙제 할 필요 없다. 전제가 이미 틀려 있는데 거기에 드립다 자존심을 걸 필요가 무에 있는가. 

근대화는 세계사 속의 현상일 뿐이지 국가의 가치를 테스트하는 통과의례가 아니다. 설령 조선이 자력 근대화를 못 할 나라였다 쳐도, 그게 뭐가 어떻단 말인가? 어차피 우리가 말하는 근대화란 것은 '19세기 이후의 유럽화'이며, 비유럽 국가중에서 자력으로 근대화를 한 나라는 일본 하나 정도다. 일본의 '자력 근대화'라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정치적으로 남의 나라에 종속되지 않았다 뿐이지 실상은 남의 옷으로 갈아입으면서 '근대화'를 한 셈이니, 어떤 의미에서는 '자력'이라고 하기도 뭣하다.

식민지 근대화론 떡밥은 근대화의 씨앗이 조선 내부에 있었는지 아닌지의 여부를 묻는 논의일 뿐이다.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조선 스스로 나라를 '유럽화'할 의지과 역량이 있었느냐를 묻는 논의다. 그렇다고 주장하든 아니라고 주장하든, 그것은 개인의 견해이지, 매국인지 애국인지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그러니까 여기다가 대고 마치 국가의 자존심이 걸린 듯이 '조선은 자력 근대화를 할 수 있었음이 틀림없다'고 외치는 건 현명한 처사가 아니다. 왜 자꾸 국밥집에서 피자를 찾나.





덧. 게다가 사실 '그럴 수 있었는가, 없었는가'를 따지는 것은, 어떤 상황에서는 무의미한 일이기도 하다. 카터 에커트는 '제국의 후예'서문에서 그 책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쓴 것이지 "무엇이 일어났어야 했는가"를 쓴 것이 아니란 이야기를 했다.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이야기하는데 "무엇이 일어났어야 했나"를 이야기 하는건 논점일탈이다.



덧글

  • 한단인 2010/10/07 02:48 # 답글

    ㅎㅎ 국밥집에서 피자를 찾나는 뭔가 명언이군요.
  • INtothe水 2010/10/07 09:28 # 답글

    동의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과거에는 동북아를 호령하고~ 뭐 이런말도 이해할순 없던데요.

    민족주의랑 국가주의는 참 위험한 개념인거 같은데
    우리나라는 너무 쉽게 생각하는경향이 보이는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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