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의 난데없는 해물 리조또 일상

1.
원래 재료는 마트에서 그때그때 발휘하는 직감에 따라서 준비하는 법. 이날의 직감은 저에게 오징어, 새우, 버섯을 명령했습니다. 양송이 옆에 있는 것은 '황후버섯'입니다. 중국에서 생산되지만 값이 비싸서 중국인들은 먹을수 없다는 슬픈 전설이 씌여 있습니다(진짜). 처음 보는 버섯인데 마트 시식코너에서 달변가 아주머니에게 설득당해 구입했습니다.


2.
무려 루(roux)를 만들었습니다. 예전에 아는 분이 '루가 없으면 초보자 요리'라며 기세등등하게 외치던 게 생각납니다. 사실 생크림이 없어서 우유로만 리조또를 만들어야 했으므로 좀 걸쭉한게 필요하긴 했습니다. 생각보다 버터가 엄청나게 들어가서 만들면서도 내내 은근한 죄책감이 들었습니다. 한국사람은 버터가 많이 사용되면 어쩐지 마음이 불편한 듯.

3.
손질한 오징어와 새우를 끓는 물에 데칩니다. 그 동안 냄비에 기름을 두르고 다진양파, 마늘, 버섯을 볶습니다. 재료가 다 익으면, 해물 데친 물을 냄비에 붓고 쌀을 넣습니다. 리조또용 쌀을 사려고 했는데 마트에 보이질 않아서 별 수 없이 일반 쌀을 넣었습니다. 약한 불에 살살 끓이면서 팔이 아프게 저었습니다.

4.
쌀이 대충 익었으면 데쳐놓은 오징어, 새우와 함께 우유, 루를 넣고 좀 더 끓입니다. 딱 봐서 먹으면 되겠다 싶을 즈음에 불을 끄고 서브하면 됩니다. 물론 소금 간을 적당히 해야 합니다.


5.
접시에 담으면 완성. 처음 해본 것 치곤 맛이 괜찮았습니다. 사실 모델로 삼았던 것은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있는 어느 가게의 리조또였는데 그만큼 뻑뻑하고 진하게 나오지는 않더군요. 루가 충분하지 못해서 그런 것일지도. 조금 더 죄책감을 견뎌야 했는데 너무 마음이 약했습니다ㅠ


5.
식사하면서 만구천원짜리 칠레산 카베르네 소비뇽 와인을 마시다가, 갑작스럽게 상그리아를 만들기로 결정했습니다. 원래 인생은 항상 갑작스럽습니다. 급히 근처 가게로 가서 필요한 아이템을 사왔습니다. 와인에 오렌지 주스, 포도 주스를 들이 붓고 사과, 귤, 석류를 잘라 넣었습니다. 만드는 과정은 좀 우악스럽지만, 결과물은 생각보다 훨씬 좋았습니다. 아차피 배합은 화학 아닙니까. 조만간 모히또 같은것도 만들어 볼 예정.


6.
오늘 실험삼아 만들어본 에그노그. 북미 지역에서는 이게 있어야 크리스마스랍니다. 무슨 맛일까 궁금해서 조잡하게 만들어 봤습니다. 설탕, 위스키, 날계란을 휘저어 섞은 다음 데운 우유를 붓고 그 위에 계피가루를 뿌렸습니다.
마셔보니, 놀랍게도, 진짜 크리스마스에 어울릴 것 같은 그런 맛! 전에 이런 걸 마셔 본 경험이 없는데도 그런 기분이 드는 것은 무슨 조화일까요? 인간의 심리적 파워가 크다는 것을 입증하는 사례? 아니면 진짜 음식의 맛에 보편적인 감성이 숨어있다는 증거?


7.
살짝 늦었지만, 완전 늦진 않았습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덧글

  • 2010/12/26 14:3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필로테스 2010/12/30 13:32 #

    만들어 줄게 ㅎㅎ
  • 카이º 2010/12/26 23:10 # 답글

    오.. 무려.. 루를 이용한!!!
    본격적인 리조또로군요!
    해산물도 실하고.. 정말정말 맛있겠는데요!

    늦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
  • 필로테스 2010/12/30 13:35 #

    감사합니다!
    다음에는 더 잘해볼 생각입니다 ^^ ㅎㅎ
  • kihyuni80 2010/12/27 08:33 # 답글

    에그노그...라는 음식은 처음들어봤는데 크리스마스에 어울릴 맛이라니 궁금하네요. ㅎㅎ
  • 필로테스 2010/12/30 13:33 #

    계피 때문인지 몰라도 정말 크리스마스 기분이 납니다. ㅎㅎ
    원래는 넛맥 같은것도 토핑해야 한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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