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미 라인스 2 (2006) 감상

 

애당초 영화적 완성도에 대한 기대 따위는 없었다. 내가 이 영화를 본 이유는 단 하나다. 영화의 배경이 북한이기 때문이다. 북한, 혹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외국 영화는 아주 묘한 재미가 있다. 외국인이 바라보는 한국(혹은 북한)은 항상 기묘하게 왜곡된 형태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와는 다른, 그 뒤틀린 시각을 상당히 재미있게 즐기는 편이다. 이게 단지 나만의 악취미는 아닌 듯 하다. 일본에는 일본을 배경으로 한 외국영화를 일부러 찾아보며 낄낄대는 관람법이 있을 정도라고 하니까.

 

돌이켜보면 전작인 에너미 라인스 1편은 상당히 괜찮은 영화였다. 이른바 밀리터리 팩션이랄까. 일반적인 팩션이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적절하게 뒤섞다면, 에너미 라인스 1편은 국제 분쟁 이슈와 보도자료 등을 픽션과 뒤섞는 형태의 영화였다. ‘블랙 호크 다운’, ‘블러드 다이아몬드등이 비슷한 계열쯤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에너미 라인스 1편은, (내가 꼽는) 역사상 최고의 게임 중 하나인 콜 오브 듀티 : 모던 워페어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영화다. 콜 오브 듀티 미션 브리핑 때 나오는 위성 정찰 자료들, 추리닝 입은 테러리스트(;) 등의 모습에서 에너미 라인스를 떠올리지 않기란 불가능하다. (하긴 콜 오브 듀티 시리즈 자체가 유명 전쟁 영화들의 오마주를 표방하는 게임이니.)

 

1편의 뒤를 이은 후속작 에너미 라인스 2는 한마디로 후진 영화. 전작의 네임밸류에 기댄 비디오용 저예산 영화임이 분명하다. 돈을 아낀 티가 역력하다. 예컨대 주한 미군인 주인공이 휴가를 보내는 장면에서 잠시 한국의 술집이 무대로 등장하는데, 관객은 그 곳이 조잡하게 만든 세트라는 걸 한 눈에 알 수 있다. 영화는 그 조잡함을 감추기 위해 화면에 세피아 효과를 엄청 줘서 미국인이 생각하는 아시아스러운색감으로 도배를 해놓고, 거길 한국이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하는게 전부다.

 

뭐 아무튼 그 미군들은 북한으로 침투해서 ‘what, your, mission?’ 따위의 혀 짧은 브로큰 잉글리쉬를 구사하는 북한 군들에게 붙잡혀 고문도 당하고 어쩌고 하다가, 결국 북한군 기지를 폭파하고 탈출하는데 성공한다. 그 세계의 북한군은 베트콩과 중국 홍위병 사이쯤 돼 보이는 난쟁이들이며 아이큐 두 자리도 안 되는 행동을 일삼는 멍청이들이다. 상당히 코믹한 게 재미있다. 특히 주인공이 탈출하면서 북한군에게 배운 --‘라는 말을 슬로우로 내뱉는 장면은 정말로 웃긴다.

 

그래도 오로지 후진 점만 있는 영화는 아니다. 에너미 라인스라는 타이틀의 압박 때문인지, ‘밀리터리 팩션스러운 분위기만은 잘 살리고 있다. 영화 초반에는 6.25 영상과 북한 군사의 퍼레이드 영상 등이 등장하면서 마치 다큐멘터리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그 때문에 심지어 제법 괜찮은 영화인가?’하는 착각마저 들게끔 한다. 영화는 2004년에 실제 있었던 양강도 폭발사고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이걸 둘러 싼 한국과 미국의 입장 차이 등이 영화 내에서 비교적 현실적으로 드러난다. 물론 한국대사가 미국 대통령을 윽박지르거나(;;) 갑자기 적극적인 북한 공격을 주장하는 등(;;) 우리가 보기에는 좀 황당한 장면도 많지만, 어쨌거나 나름대로 연구해서 시나리오를 썼다는 느낌을 준다.

 

시나리오에 대해 좀 더 이야기 하자면, 원래 실패한 팩션이 대개 그렇듯이, 이 영화 또한 배경 설정에 신경을 쏟느라 정작 드라마가 완전히 부실해져 버린 케이스. 감독(이자 시나리오 작가) 본인도 그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영화 내에 생뚱맞은 감성 코드를 집어넣어 놨다. 그게 뭔고 하니, ‘스승과 제자클리쉐다. 예컨대 주인공이 위기에 처한 순간, 훈련 받던 시절 엄격한 교관의 가르침을 떠올리면서 위기를 극복하는 식이다. 종국에는 주인공이 미국으로 돌아와 교관님의 가르침 덕분에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라며 거수경례를 붙이는 장관도 등장한다(;;). 로버트 하인라인이나 사용할 법한 이런 감성 코드를 미국인들은 좋아하는 모양이다. 뭐 그 외에도 이상한 거 많다. 북한 땅에서 죽어가는 미군의 눈에 산신령과 호랑이(;;)의 모습이 보인다던지… 전반적으로 이 영화는 한국에 대한 단편적인 연구를 좀 하긴 했는데, 그걸 사용하는 방법이 아주 어설픈 영화다. 나한테는 그게 재미 요소였지만.

 

영화 자체의 객관적인 완성도가 상당히 떨어지는데 반해 촬영과 편집만큼은 제법 훌륭했다. 특히 몇몇 장면은 마치 다큐멘터리와 MTV를 섞어놓은 듯한 느낌을 풍기는데, 살짝 폴 그린그래스 영화 느낌도 나는 것이 신선하고 좋았다. 누구에게 결코 추천할 영화는 아니지만 이상하게도 나한테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하지만 그건 독특한 나만의 감상법 덕분이니, 행여나 이 영화를 직접 보는 우를 범하진 말기를.


덧글

  • 가랑비 2012/10/31 01:03 # 삭제 답글

    산신령과 호랑이ㅋㅋ
  • 몽이 2013/03/24 09:45 # 삭제 답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에너미 라인스 어떤영환가 보러 들어왔다가 실컷 웃고갑니다.
  • 팬텀 2013/04/04 08:32 # 삭제 답글

    요즘 시절이 어수선하다 보니 이 영화가 떠올랐네요^^ 엉성한 영화지만 그래도 남북관계 묘사나 고증에 있어서 007어나더데이보다는 훨씬 낫지 않았나 싶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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