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 샨티 옴(2008) 감상


내가 살면서 가장 강력한 '문화 충격'을 받았던 순간 중 하나는, 인도의 고속버스 안에서였다. 버스에서는 낯선 인도영화가 한편 상영되고 있었다. 아직까지 그 영화의 제목은 모른다. 제법 유명한 영화일 것이라고 짐작만 할 뿐이다.

영화는 한 무리의 악당들이 평화로운 가정을 습격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집안에는 장성한 두 아들이 있다. 아들 중 하나는 인도 영화계의 상징적인 배우 '샤룩 칸'이니, 아마도 그 아들이 주인공이리라. 아들들은 악당들에 맞서서 가정을 지키기 위해 사투를 벌인다. 그렇지만 역부족. 결국 아들들은 악당에게 굴복하게 되고, 거기서 '둘 다 죽는다'. 영화 시작한지 10분만에 말이다.

'이거 스크림 시리즈 같은 건가?'하고 생각했다. (스크림 1편 초반부에 유명 배우인 드류 베리모어가 등장한다. 관객들은 그녀가 주인공일 것이라고 예상하지만, 그녀는 초반에 죽는 단역일 뿐이었다. 관객들의 기대를 배신하는 것이 스크림 시리즈의 특징.)

나의 빈약한 상상력은 주인공의 죽음 앞에서 고작 '스크림'을 떠올렸다. 그렇지만 그 영화의 전개는 내 상상을 벗어나 있었다. 내가 컬쳐 쇼크를 받았던 부분이 바로 그 다음에 등장하는 부분이다. 주인공들은 죽음을 맞는 순간, 어디에선가 태어나는 아기의 몸으로 '환생'을 했던 것이다! 결국 영화는 그 환생한 아기들이 성인으로 자라서 자기들을 죽인 원수들에게 알뜰하게 복수하는 내용이었다.

인도 영화 특유의 비주얼 때문에 영화를 웃으면서 보긴 했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굉장히 철학적인 내용이다. 보통 우리는 인격의 동질성이 그 한 사람의 일생으로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인도인들은 그 인격이 쭈욱 계승된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인도 철학에 따르면, 세계에는 우주의 보편 원리인 '브라만'이 있고, 또 개별적인 사람들의 자아인 '아트만'이 있다고 한다. 쉽게 말하자면 브라만은 초월적인 무언가이고, 아트만은 사람 몸뚱이를 옮겨 다니면서 계속 유지되는 인격인 셈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 순간 그의 아트만은 다른 생명에 깃들어 태어난다. ...'얼마나 경제적인가!'(래리 고닉이라는 만화가의 역사 만화에서 인도 철학을 설명할때 '얼마나 경제적인가'라는 표현을 썼다. 어렸을때 본 만화인데 아직까지 그 장면의 삽화가 생각난다.)

아트만은 몸에서 몸으로 계속 계승된다. 살아서 착한짓을 했는지 나쁜 짓을 했는지, '카르마'를 대차대조표에 넣고 결산을 해보면 다음생에 뭘로 태어날지가 결정되는 시스템이다. 계속 그렇게 순환하는 고리처럼 환생하다가, 어느 순간 아트만과 브라만이 결국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그 환생은 끝이 난다고 한다. 환생 없는 죽음, '니르바나(열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아가 우주와 합치되면 다시 태어날 필요가 없지 않겠나. 아, 흥미로운 인도식 세계관! (환생의 고리에서 빠져 나와 열반에 드는 것이 목표라면, 어쩐지 업무의 피로에서 벗어나 치킨집 차리고 싶어하는 하는 회사원 같긴 하다만)


사족이 길었다. 사실 길 수 밖에 없었다. '옴 샨티 옴'은 바로 내가 인도의 고속버스에서 봤던 그 영화와 거의 똑같은 플롯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람이 환생하여 복수를 한다'. 내가 보기에는 상당히 기이해 보이는 이 아이템이, 인도에서는 굉장히 인기있는 플롯인 모양이다. 최소한 두편이나 영화화 되지 않았는가. 그냥 영화화 된 정도가 아니다. 옴 샨티 옴은 그 전까지의 발리우드 흥행 기록을 갈아치울 정도로 대 성공을 거두었다.

영화는 영리하다. 일단 영화의 배경이 1970년대 발리우드다. 이게 왜 영리한거냐면, 이 설정을 통해 '옛날 발리우드' 특유의 정신없는 뮤지컬 연출을 천연덕스럽게 구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요즘 인도 영화는 옛날처럼 황당무계한 춤과 노래로 일관하지 않는다. 인도인들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옛날 인도 영화 업계가 무대'라고 한다면, 옛 인도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기상천외한 뮤지컬 쇼를 재현할 수 있는 좋은 구실이 되지 않는가.

실제로 그렇다. 옴 샨티 옴의 초반부 볼거리는 복고풍 발리우드 뮤지컬 장면이다. 마냥 코믹스럽지 않게 잘 만들었다. 여주인공 샨티 역할을 맡은 '티피카 파두콘'은 인도 여성의 미모를 증명이라도 하듯 빛이 난다. 샤룩 칸은 뭐, 이제 그 쪽 업계에서는 거의 리빙 레전드이니 달리 말이 필요 없다.

영화 후반은 시대가 좀 바뀐다.(주인공이 다시 태어나서 자라야 하므로 30년의 세월이 지난다) 초반이 70년대 발리우드식 뮤지컬이라면, 후반은 물랑 루즈를 연상케 하는 브로드웨이식 뮤지컬이다. 심지어 헐리우드를 연상케 하는 영화제 장면도 있다. 그렇지만 영리한 인도 영화인들은 뭐가 됐든 맵시있게 잘한다. 얼핏 보면 브로드웨이, 웨스트 엔드 혹은 아카데미 시상식장이지만 거기서 춤추는 사람들의 안무는 발리우드스럽게 독특하다. '웃김'과 '멋있음'의 교묘한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다. 

처음부터 끝까지 '인도 영화'다운 영화다. 고전적인 인도식 환생 스토리의 정취와 발리우드 뮤지컬 영화의 요소를 듬뿍 가지고 있다. 아주 카레 냄새가 진동하는 영화. 특히 중반 이후에 나오는 수십분(체감시간;;)에 걸친 논스톱 댄스 파티가 압권이다. 2000년대 이후 인도 영화를 딱 한 편만 보아야 한다면, 아마도 이걸 봐야 '인도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을 듯.



덧. '혐오스런 마츠코의 인생'이 이 영화의 일본 버전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헤드윅'은 미국 버전쯤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이 영화의 한국 버전쯤 될 만 한 것은 뭐가 있을까? 한 5분 생각해 봤는데... 그런거 업ㅋ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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