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덫. 5.16은 혁명인가 쿠데타인가? 견해


5월 16일을 맞이한 잡문이다. 사실 별 관심 없지만, 요새 미디어에서 너무 떠들어대길래.

5.16이 혁명인지 쿠데타인지 논하는 것은 사실 별로 중요한 논의가 아니다. 그냥 언어의 덫에 불과한게 아닌가 싶다. 나에게는 '안중근이 테러리스트인가?' 라는 질문과 비슷하게 들린다. 일단 안중근 이야기부터 좀 할 필요가 있겠다.

혹자는 테러리즘의 여러가지 정의를 들먹이면서 안중근이 '불특정 다수를 노린 것이 아니라, 적국의 요인을 노린 것이기 때문에' 테러리스트가 아니라고 이야기 한다. 나는 그게 테러리즘의 본질을 좀 잘못 짚은 이야기라고 본다.

테러리즘의 본질적인 개념은 '비대칭전력'에서 나오는 전술이라는거다.요컨대 적이 강하고 내가 약한 상태에서 1:1로 승산이 없을 경우, 암살이나 폭파 따위의 우회적인 방법으로 적을 무력화 하는 전술이다. 안중근의 이토 암살도 엄연히 이런 맥락에서 이뤄진 것이다.

단지 그 과정에서 효과적인 테러를 위해 무관한 사람을 희생시키는 '비도덕적인 테러리스트'도 있을 것이고, 오로지 관계자만을 노리는 비교적 '도덕적인 테러리스트'도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해 본다면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임에도 불구하고 도덕적인 기준을 지킨 테러리스트'라고 보는게 더 합당하다.

요컨대 테러리즘의 본질은 그 '전술'적인 측면에 있는 것이지 '도덕적인'면에 달린 것이 아니라는 소리. 그러니까 '안중근은 무차별 살인을 하지 않았으므로 테러리스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이야기 할 게 아니라 '안중근은 테러의 필요성을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무관한 인명 피해를 최소화 하고자 했던 도덕적인 테러리스트이므로, 알 카에다 같은 테러리스트와는 구분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이 더 낫다.

즉 테러리스트라는 말에 지나치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거다. 테러리스트라도 다 같은 테러리스트가 아니고, '어떤 테러리스트이냐'가 중요한 법이니까. 안중근의 도덕성과 애국심을 강조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테러리즘의 정의를 자꾸 협소하게 줄일 것이 아니라 그냥 '안중근은 도덕적이고 애국적인 테러리스트였다'라고 이야기하면 될 일이다.


서론이 좀 길었다.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 5.16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로 '혁명'이란 말에 별로 집착할 필요 없단 거다. '혁명'이라고 무조건 정당화되는게 아니라 '어떤 혁명'인지가 더 중요한 법이다. 5.16을 혁명이라고 부르는 사람들은 박정희의 군부가 '민중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을 자꾸 드러내고 싶어하는 모양인데, 그건 별로 중요한 게 아니다.

5.16의 본질은, 거사의 주체가 '그냥 지들끼리 일을 벌인 군부'였는지 혹은 '시민들과 시대의 요청을 받아들인 군부'였는지에 달린게 아니다. 본질은 그 이후에 벌어진 개발 독재와 반민주적인 정치행위다. 그러니까 혁명이라고 부르던 쿠데타라고 부르던 그건 그냥 이름일 뿐이고 본질은 변함이 없다.

만일 5.16을 혁명이라고 한다면, 혁명은 혁명이되 '반민주 독재 혁명'이었다고 해야겠지. 중국의 문화대혁명 같은거, 아프리카의 어느 부족 군벌이 말하는 '혁명' 같은 거, 뭐 그런거다. 혁명이란건 테러리즘처럼 단지 기술적인 용어일 뿐이고, 그런 용어를 가치 판단의 기준으로 삼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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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글

  • 검투사 2011/05/17 06:40 # 답글

    그보다도... 이렇게 떠들어대는 진짜 이유가... 박근혜 견제용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죠.

    그래서 그냥 다들 뭔 소리하든 무시하고 있습니다.
  • Mediocris 2011/05/17 08:56 # 답글

    혁명은 가죽끈을 새로 갈아 책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는 뜻으로 구질서의 변혁이 전제이며 국민의 지지가 결론입니다. 박정희는 국민의 70%의 지지를 받고 있으므로 5.16은 혁명입니다. 댁은 5.16 혁명에서 개발독재와 반민주를 보지만 국민의 70%는 경제성장과 민주 발전의 기초를 봅니다. 어느 쪽 시각이 옳은가는 국민의 지지가 증명합니다. 국민의 지지는 혁명을 정의한 맹자의 이론이기도 합니다. 국민들이 댁처럼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혁명이 아니라고 하지말고 그냥 쿠테타라고 하십시오. 그렇더라도 5.16 당시에는 양반 출신들끼리의 권력나누기(power sharing)에 불과한 장면 정부에 한방 먹이는 걸 원하는 국민이 대다수였음을 잊지는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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