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드라인 (2010) 감상





스팀 펑크 같은 세계관의 미래, '레드라인'이라는 스피드 레이싱 대회가 열린다. 각종 무기와 슈퍼 엔진으로 무장한 자동차들이 벌이는 무규칙 레이싱 대회. 여기에 스피드의 극한을 추구하는 순정파 레이서 JP가 출전한다.

스토리는 완전 진부하다 못해 유치하다. 하지만 나는 개봉전부터 이게 너무너무 보고 싶었다. 같은 스토리로 할리우드 영화를 만든다면 나는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스토리로 재패니메이션을 만든다면 얘기가 좀 다르다.

내가 기대했던 것은 '이타노 서커스*'와 같은 빠르고 감각적인 레이싱 장면, 매드 하우스 특유의 과감하게 왜곡된 작화, 주인공의 리젠트 머리에서 느껴지는 80년대식 열혈 경파물의 향기, 그리고 그걸 하나하나 손으로 그린 2d 셀 애니메이션의 아티스틱한 느낌 따위다. 전부 일본 애니메이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감각을 잘 살릴수 있는 그런 요소들이 아니던가.

하지만 관람을 마친 지금의 감상을 표현하라면, 글쎄, 좀 실망스럽다고 해야겠다. 좋아하는 재료는 다 들어가 있는데 결정적으로 간이 좀 싱거운 음식같다. 연출자의 역량 문제라고 본다.

애니메이션은 대개 짧다. 왜냐하면 한컷한컷이 다 돈이니까. 그러니까 내용은 간결하고 단순해야 좋다. 그런데 이 애니메이션은 곁가지가 너무 많다. 지나치게 많은 출전 캐릭터, 레이싱의 무대인 로보월드의 설정, 생체병기와 거대대포, 그리고 주인공들의 로맨스까지 골고루 등장하는데, 이걸 짧은 상영시간에 보여주기에는 버겁다. 그러니까 이야기의 응집력이 약해진다.

스토리 전개 자체야 별 거 없으니까 중요할거 없다 쳐도, 그것으로 인해서 클라이막스에 김이 빠지는건 문제다. 다른 필요없는 요소들을 다 쳐내고, 순수하게 JP의 마지막 경주에 올인하는 편이 더 나았을 거다. 초인적인 스피드로 마지막 스퍼트를 감행하는 그 순간이 바로 이 작품의 하이라이트. 그 부분에서 관객과 주인공이 물아일체가 되면서 말초신경이 짜릿하게 곤두서야 할 텐데, 정작 임팩트가 초반의 레이스 장면만 못하다. 별 관계없는 요소들이 너무 많이 얽혀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기대에 비해 싱겁게 느껴질 수 밖에.

이래저래 아쉬운 면이 있기는 해도, 무익한 영화는 아니다. 관객들에게 일종의 '영감'을 불러일으킬 타입이다. 적어도 나에겐 그랬다. '내가 만들면 좀 더 잘할 수 있능데!!' 뭐 이런 의욕.




*이타노 서커스 : 이타노 이치로가 연출한 공중전 스타일. 마크로스의 미사일 발사 장면을 연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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